지하철 관찰 일기

by 다정한 포비

이른 아침부터 남편 건강검진 병원에 따라왔다.


병원으로 가는 길, 토요일 아침 지하철 안은 한산하고 쾌적했다. 하지만 정차역을 지날 때마다 열리는 출입문으로 덥고 습하고 조금은 역한 장마철 특유의 냄새가 훅 밀려들어왔다.


앞자리에는 젊고 건장한 역삼각형의 몸매를 자랑하는 남자가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짙은 초록색의 촘촘한 망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듯한 검은색 장화도 역시 멋스러웠는데, 다만 갑자기 하얀색 선을 길게 늘어뜨린 유선이어폰을 사용해서 어딘가 언발란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 무선이어폰을 사용하던데? 본인만의 고유한 취향인가? 요즘 핸드폰들은 유선이어폰 꽂는 구멍도 없던데? 독특하다 독특해'


망사 옷 사이로 비치는 남자의 실루엣이 소싯적 JYP 박진영을 떠올리게 했다. 역시 나하고는 거리가 있는 패션취향이었다.


3호선으로 갈아탄 지하철에서 짙은 노랑과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젊은 여성 일행이 눈을 반짝이며 입구의 우리를 바라보았다. 유쾌하고 밝은 기운을 내뿜는 젊은이들은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는데 아마도 일본 관광객들이 아니었나 싶다.


좌석에 앉자마자 민소매의 청소재 후드티를 입은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보였다. 남자의 오른쪽 팔뚝에는 여인의 얼굴이 크게 문신되어 있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 있는 남자의 팔목에는 어젯밤의 즐거운 이벤트를 증거라도 하듯이 종이 밴드 입장권이 꼬깃하게 채워져 있었다. 다음역에서 잠에서 깨어 허둥지둥 내리는 남자는 문신의 사이즈와 느낌과는 다르게 앳된 얼굴이었다.


검진 접수를 하는 남편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밤새 대장내시경 약을 먹고 일을 치르느라 얼굴이 까칠하고 말라 있었다.


옆에서 할 일이 없어도, 또 세네 시간을 기다려야 해도 역시 잘 따라왔다 싶었다.


남편과 나는 한 배를 탔다. 우리 사이에는 끈끈한 유대감이 있다. 남편과 한 배를 타고 함께 항해를 하게 되어 감사하고 고맙다.


오늘은 비 오는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을 관찰한 이야기를 적어 보았다. 조금 졸렵다. 병원 로비 소파에서 달콤하게 흐르는 재즈를 들으며 잠깐 졸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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