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에는 해 떨어지기 바쁘게 어두워지는지라, 벌써 어둑해졌다. 노인은 이물 쪽 낡은 뱃전에 기대어서 될 수 있는 대로 편히 쉬었다.
첫 별이 나타났다. 노인은 그 별의 이름이 '리겔'성이라는 것은 몰랐지만, 그 별이 보이면 다른 별들도 곧 나타나서 모두 자기의 먼 친구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저 고기도 내 친구이다." 하고 그는 소리 내어 말했다.
"저런 고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단 말이야. 그렇지만 저를 죽이지 않을 수 없어. 인간이 별을 죽일 필요가 없는 것이 다행이다."
날마다 사람이 달을 죽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달은 달아나 버릴 것이다. 날마다 해를 죽여야 한다고 상상해 보라. 그러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행운을 타고 난 셈이지,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자 노인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큰 고기가 불쌍해졌다. 불쌍하다는 생각에도 고기를 죽이겠다는 결심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저 고기를 잡으면 몇 사람이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지, 물론 자격이 없다. 고기의 태도라든지 저 당당한 위엄을 생각해 보면, 아무도 그것을 먹을 자격이 없다.
나는 이런 것은 잘 모르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저 바다에서 살면서, 우리의 참다운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하루를 가다듬는다.
극복하고 정복해야 하는 요즘 관계에 식상해져 있었다.
'노인'의 이 크고 거대한 물고기를 정복하겠다는 의지와 동시에 자연에게 보내는 경외심과 겸손함이 마음에 와닿아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기려고만 하지 말고, 극복하려고만 하지 말고, 경건한 것들에 대해,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우리와 다르지만 또 다르게 빛나는 존재들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함께 했으면 좋겠다.
왜 고전인지, 왜 다시 읽어도 새로운지, 중학교 때 읽으면서는 지루했던 묘사가 지금은 왜 황홀하게 느껴지는지 깨달음을 준 '노인과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