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밍한 집밥이 장점이라니!

퇴직 후에 좋은 점 : 첫 번째 이야기

by 다정한 포비

매일 10시를 넘겨 퇴근하고 주말에도 하루 종일 출근하여 일하던 시절, 나는 짧은 상상글 하나를 썼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지친 내 마음을 오롯하게 담아 한적한 전원생활을 그리는 글이었다.


2023-04-17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눈이 부셔 마지못해 일어난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전혀 없다. 손님도 없다.


아침은 거른다.

(차 마시기도 귀찮다)


소박한 정원에 나간다.

벚꽃 없다.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소란스러워질 것 같다.)

한편에 키 작은 조팝나무 무리, 라일락이 있다.

텃밭도 없다. (안 한다 일)


어디든 등을 기대고 앉아 그저 가만히 있는다.


재즈가 계속 흐른다.


그러다 존다. 꾸벅꾸벅.


허기가 지면 볶음 김치와 콩자반 반찬 두 개만 차려 놓고 흰밥에 물을 말아 가볍고 맑게 끼니를 해결한다. (고상한 것도 귀찮다)


완벽하게 무료한 오후다.


고추잠자리랑 무당벌레가 놀러 왔으면 좋겠다.


주홍빛으로 타오르는 저녁노을을 바라본다.


어디선가 아궁이 불 때는 냄새가 난다.


담요를 덮는다.


하루가 간다.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


앗! 저기 반딧불이가 날아오르네!


내일 할 일도 역시 없다.


그저 공기 같이 편안한 손님이 한 분 오실 것 같다.


'그나저나 오늘 커피는 마셨던가? 까먹었구나'


(만사가 귀찮은 밤)


#상상#만사귀찮은밤#그래서 상상#글쓰기그램


그랬었는데.


공무원 명예퇴직을 한 지금은 절반은 이루었다.


매일 살림을 하고, 식사를 차리고, 성경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수영과 요가와 뜨개질을 배우고 그리고 생각을 한다.


사실 오늘 그때의 글을 소환한 이유는 바로 다음의 문장 때문이다.


‘볶음 김치와 콩자반 반찬 두 개만 차려 놓고 흰밥에 물을 말아 가볍고 맑게 끼니를 해결한다. (고상한 것도 귀찮다)’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출근한 남편, 학교 간 아이 그래서 나는 평일에는 혼자 아침 겸 점심을 차려 먹는다.

혼자 먹는 끼니에 정성을 들이기가 다소 귀찮아서, 대충 냉장고에서 전날 남은 찌개와 국을 메인으로 몇 가지 밑반찬을 꺼내 간소하게 차려 먹는다. 그런데 그 간소함이 좋다. 밍밍하고, 가볍고, 속도 편하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어서 세상 편안하고 조용하다. 나의 점심은 한낮의 자연스러운 볕과 같다.

직장을 다닐 때에는 한 시간 안에 커피까지 우당탕탕 해치워야 했던 점심시간이 낙이고 낭만적이게 느껴졌었는데 아쉽게도 그때 먹은 음식들이 지금은 자극적이고 짜게 기억된다.


이제 퇴직 후에 꼽아보는 장점 중에 나의 밍밍한 집밥 점심을 포함하게 될 줄이야.

이러다 고혈압도 탈출하게 되려나?

나는 절로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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