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처럼 나도 갑자기 회사일을 접고 당장 뛰쳐나가고 싶어질까 봐...... 일부러 천천히 읽고 속도를 더디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그러나 네가 그렇게 행동한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중 리스본행 야간열차 43p
나는 인생이라는 기차에 탑 승하여 어둡고 긴 터널구간을 지나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하여 내 영혼의 떨림을 더는 모른 척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운명처럼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내 앞에 정차했다.
주인공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고전어와 문학을 사랑하고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교수로 이혼 후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벽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어느 출근길 아침, 자살을 시도하는 포르투갈 여인을 우연히 만나고 ,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의사의 글에 이끌려 운명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이곳이 리스본이었다.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생각하게 됐고, 어떤 포르투갈 의사가 마치 그에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어 찾아온 도시.' 82p]
소설은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 의사 아마데우의 생전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과 아마데우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의 내용, 그의 서신, 메모 등을 함께 풀어내 책 속의 책을 읽는 구성이다. 책 속의 책이라니. 한 권의 책에 또 다른 책을 녹여내는 글쓰기 과정은 작가에게 두 배, 세 배 더 힘들지 않았을까.
나도 종종 글을 써 보겠다고 자리에 앉았다가 상황, 시간, 장소, 인물 묘사의 방대함에 금방 나가떨어질 때가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찰나의 순간을 재미있고 참신한 문장으로 표현해 작가의 치밀한 관찰능력과 참을성 있고 고단한 작가의 시간이 그대로 느껴져 절로 찬사가 나왔다.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본명은 페터 비에리로 철학, 고전문헌학, 인도학, 영어학, 언어철학 등에 두루 능통한 인문학자로 이 작품에서도 작가의 언어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철학적 사고 등이 풍부하게 담겨 있어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것은 마치 나였으나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작가가 소설 속에 풀어내 발견해 가는 기쁨이었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60p]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384p]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570p]
결론으로 나는 머문다.
그것이 성숙과 행복의 결론으로 가는 길이었으며 그리하여 감사하게 회고할 날이 오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작가와의 대담에서 페터 비에리는 말한다.
['현실에서 떠난다고 해서 모두 자유로워지는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어요. 자유를 향한 진일보도 되지만 잘못된 길일 수도 있으니까요. (중략) 판타지는 그래서 중요해요. 판타지를 통해 일탈을 시도해볼 수 있으니까요.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도 아주 중요하지요. (중략) 한 번 떠나고 나면 두 번 다시 익숙했던 삶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봐야지. 여태껏 같이 지냈던 사람들은 다 어떡하지?(중략) 우리는 내면에서 요구하는 모든 삶을 다 살아낼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렇다면 경험하지 못한 나머지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머지 부분은 당신의 판타지를 놓아두는 공간이다."라고 대답할 도리밖에 없습니다. ' 577p]
그저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치열하게 사는 수밖에 없다.
이를 악물고 하루를 맞닥뜨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하루 해가 저물 무렵이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가 선택한 길.
'나를 돌아보고 나를 알아가게 하는 그리하여 그 여정에서 모두가 치유받는 이야기. 위대한 작가의 아름다운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