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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혜 Jun 21. 2020

'아버지'에 관한 사색2-아버지와 된장찌개

따르릉, 전화가 울린다.

[아버지]라고 저장해 둔 이름이 뜬다.

숨을 한 번 고른다. 무슨 일일까- 망설이며 전화기를 든다.

아니나 다를까, 배터리 충전기를 사야 하니, 3만 원을 입금해 줄 수 있겠냐는 전화다. 삽시간에 내 표정이 굳어진다.


년 전부터 1000만 원, 100만 원, 50만 원까지, 그가 요구하는 금액은 차츰차츰 줄어 이제 3만 원으로 내려왔다. 그 액수가 줄었음에 기뻐해야 하나. 아니면 아버지께서 융통할 수 있는 돈이 고작 3만 원도 안 된다는 사실 알아채고 괴로워해야 하나.


어설프게 철이 든 의 본능은 후자 쪽을 향해 있다. 괴로운 데다가 억울한 마음까지 든다. 학창 시절 아버지께 용돈을 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이 컸다. 용돈은커녕 죽을 동 살동 장학금을 받아 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 결과로 남은 건 입사한 지 6년이 되도록 모아놓은 돈이 없는 빈 통장뿐이라는 사실 받아들이기 힘 현실이다.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든 것은, 가진 건 뭣 없어도 언제나 호랑이 같고 큰 산처럼 위풍당당했던 아버지가 이제는 세상 풍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어쩔 줄 몰라하는 초로의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다.


아침마다 어머니가 다려준 와이셔츠를 단정하게 입고 출근하시곤 하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마을에서 술, 하면 손꼽힐 정도로 말짝으로 마시고도 집에 와서 반주를 하시던 아버지는 이제 없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해 온갖 동창회나 모임에서 시끌시끌 사람들의 중심에 있던 그런 아버지 정말이지 온데간데없다.


이제는 웬걸,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었지만 수입이 좀체 없는 시골의 빈 가게에서 뻑뻑 줄담배만 피우는 노 사장님만 남아 있을 뿐이다.  겨울이 되면 귀도리에 낡은 오리털 잠바를 걸치고 어묵이나 붕어빵을 팔기도 하는 런 늙은 사내 있을 뿐다.


그런 아버지에게 살갑게 다가가 위로하고 힘줄만큼 나는 곰살맞지 못하다. 어린 시절 집에 늦게 들어오시기 일쑤였고 것도 자주 취해 있던 습은 내 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향이 아닌 대도시에 직장을 구한 것도 한몫했다. '이번 주는 일이 많아서', '친구를 만나야 해서', '과제가 있어서'. 다양한 이유들 때문에 집에 자주 내려가지 않았으니 아버지와 가까워질 시간부족했다.


1, 2월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달 내내 고향에 가질 못했다. 필 내가 일하는 지역은 대구. 하루에 확진자가 100명씩 나왔고 TV만 틀면 대구 관련 뉴스가 연일 보도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구는 자가 봉쇄되었다. 들어오는 사람도 가는 사람도 없었다. 나와 여동생은 월세집 안에서 두려워하며 근신다. 텅 빈 거리에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만 요란했다.


바로 그런 2월의 어느 날, 전화가 울렸다. [아버지]. 오랜만에 뜨는 휴대전화에 세 글자. 무슨 일이실까, 괜스레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통화 버튼을 눌더니 아버지는 다짜고짜 물으셨다.


"너희 뭐 먹고 사노?"


열 글자 이상 넘어가게 말하지 않 아버지의  발화는 직선으로 던져진 창처럼 훅 들어다.


"그냥 밥 먹고 살아요."


반면 역시 열 글자 이상 넘어가지 않는 딸의 문장은 대고 마고 던진 처럼 땅을 향해 굴렀다. 지루한 경기를 끝내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 듯.


"아부지 지금 느그한테 간데이."


또다시 날아온 창. 전후 사정을 설명는 법이란 없다. 일단 던져졌으아야 할 뿐이다. 아버지, 코로나 걸리시면 어쩌시려고요. 살갑게 걱정하는 말투는 섞지 못했다.


"된장 끓여서 들고 간다."


 말을 끝으로 전화는 무뚝뚝하게 끊겼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맞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켜 집을 간단히 청소했던 기억이 난다. 막무가내 아버지의 막무가내 사랑이 조금 버겁게 느껴졌다. 동생과 나는 알아서  챙겨 먹고 있냉장고엔 자리도 없는데, 굳이 된장을 끓여서 들고 오실 필요가 있는 걸까?


하지만 그에게딸에게 실로 필요한 안 한라는 고심은 어 보였다. 당신의 눈으로 딸의 안부를 확인하고 뜨끈한 밥이라도 먹이고 싶은 일념 외의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던 것 같다.


1시간 뒤, 초인종이 울렸다. 어느새 근육이 다 빠져 작은 소년 같아진 아버지 글쪼글 주름진 얼굴로 멀겋게 서 계셨다. 그새 좀 더 늙으신 것 같은 건 나의 착각일까. 코로나 걱정은 안 되셨던 걸까. 그러나 실상 그에겐 본인의 안 같은 것은 안중에 없어 보였다. 오직  손 가득 쥔 반찬 보따리 중요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나도 뒤이어 일어날 일 대해서는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건 오뎅, 이건 닭개장. 엄마가 가는 길에 갖다 주라 카드라." 


투박한 손으로 턱턱 반찬을 내려놓던 아버지가 별안간 공포스러운 무언가를 본 듯이, 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현기증 나는 람처럼 서 버린 것이다.


"아니, 아니, 된장이 어디 갔노. 내가 분명 된장을 한솥 끓여가, 비닐봉지에 묶어놨는데." 


그랬다. 허망하게도, 그는 보따리 속 모든 음식 가운데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그가 야심 차게 준비한 된장찌개를 빠뜨리고 온 것이었다. 된장찌개, 그것은 그가 오늘 대구로 온 목적이자 수단이었다. 그것은 보나 마나 아침부터 성화라는 아내의 원성을 들어가며 그를 이른 시간부터 부엌에 세워뒀을 터였고, 그의 평소  스타일을 고려하자면 갖은 채소와 고기를 아낌없이 팍팍 넣어 한솥 푸짐하게 끓여졌을 것이었다.   


고백하건대 살면서 아버지가 그렇게 낭패 겪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진땀 흘리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게다가 아버지는 자신이 이제는 기억력이 깜빡깜빡 노인, 전에 없이 허둥대는 일이 생기고 생각도 못한 실수를 하는 노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딸내미 앞에 치욕스럽게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허둥대는 아버지를 보듬을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다. 내가 했던 일이라고는 고작 그그래도 기어코 새로 끓여주겠다는 찌개의 완성을 위해  언제 넣어뒀는지 모르게 꽁꽁 언 대파 냉동실에서 찾아 드리는 것과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오래된 된장 통, 그리고 알감자 몇 알을 전해 드리는 것이었다. 마트에 갈 생각은 코로나 탓에 엄두도 못 냈다, 딸은.


난처 시간이 가까스로 흐르고 그는 임기응변으로 완성한 된장찌개를 민망한 얼굴로 내려놓았다.


"일단 무라. 재료가 많았으면 맛있을 긴데."


그날의 밥상은 두고두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두부도, 호박도 없이 멸치국물에 그저 고춧가루와 된장을 휘휘 풀어 대파와 감자만 넣고 끓인 된장. 그리고 전자레인지에 급하게 데운 햇반 하나. 촐한 밥상이었지만 감히 조촐하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밥상. 다행히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다.


 "맛있어요. 아버지. 재료는 별로 없어도 정말." 


맛없을 수 없었다. 스스로 벌인 일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임에도 없는 재료를 모두 끌어모아 과년한 딸내미에게 손수 차려주신  된장찌개는 맛이 없다고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된장을 푹푹 떠서 흰밥과 함께 입에 밀어 넣는 모습에 마음이 풀어졌던 것 같다. 아랫이 하나가 빠진 입으로 그날 처음 허허 웃으셨으니까.


그러고 나서 아버지는 담배 한 개비만을 더 태우시고는, 이제 가보겠다며 용건이 끝난 사람처럼 금세 집을 나섰다. 그는 아마 돌아가는 길에도 낡은 트럭의 시동을 허둥지둥 고, '이거 왜 잘 안 돼' 하며 서툰 동작으로 내비게이션을 작동시켰을 것이며 어처구니없는 당신의 실수를 떠올리며 운전 내내 담배를  피웠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는 그렇게 아주 시 머물다 가셨다. 지만 그 이후 나는 자주 그때의 된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되었다. 그건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가장 뜨겁고도 진한 된장찌개 남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마 르실 것이다.

그는 분명 된장찌개를 두고 오셨지만 두고 오지 않은 무언가를 보여주셨다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기어코 알게 되었다.

내가 서른 두 해 동안 먹고 자라 게 무엇이었는가를.

부족한 재료로도 끝내 끓여낸 된장찌개 같았던 내가 받은 그 모든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는 도무지 그를 미워할 수가 없 운명으로 태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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