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정혜 Jun 14. 2020

집순이의 요리

  시간이 많아지면 난 늘 직접 요리를 하곤 했다.


  단순하게 말해 백수가 되면 늘 그랬다. 뭐라도 생산해낼 만한 에너지는 있는데 정작 발휘할 공간은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년 전, 노량진에서 두 달 살 때, 고시원을 관리하던 화학교육과 알바생이 첫날 해준 조언이 있다.

"김치를 볶을 땐 잘게 썰어서 열이 닿는 표면적을 최대한 줄여야 해요. 그래야 금방 익어요."


   지방에서 올라와 모든 게 낯설고 조심스러웠던 나, 게다가 문과였던 나에게 묘하게 이과스럽던 그 조언은 기분 좋은 잔상을 남겼다.


허기가 질 때면 작은 고시원 주방에 서서 '김치는 잘게'를 마법 주문처럼 되뇌며 기름을 두르고 밥과 김치를 볶아 계란 프라이를 얹어 먹곤 했으니까.

(실상 거창한 요리를 한 건 아니었다.)


  그 해 겨울 낙방을 하고 대학교 근처에서 자취할 때는 된장찌개도 종종 끓이고 스파게티도 만들곤 했다. 같이 살던 동생이 그래도 된장찌개는 엄마보다 내 것이 더 맛있다고 했다. 비결은 단순했다. 감자를 먼저 넣어서 전분기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것이었다. 동생이 맛있다고 말해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서 된장찌개를 자꾸자꾸 했었다.


  작년엔 허리를 다쳐 예기치 못하게 다시 백수 신세가 되었다. 남겨 두지 않으면 언젠가 희미해질 것 같아 찍어둔 요리 사진들을 열어 보았더니, 잔치국수, 양념 돼지갈비, 콩국수, 경주 교리 김밥, 강황 카레, 감자전, 떡볶이, 김치 청국장, 부추전, 감바스까지- 그 어느 때보다 요리를 다양하게 많이 했었다.


  내가 타향에서 집밥을 못 챙겨 먹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던 엄마는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는 요리 사진이라도 사진을 전송해 보내면 그 어느 때보다도 손뼉 치며 기뻐해 주었다. 그럼 나는 어린아이 마냥 벅찬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힘을 얻었다.


   요리를 하면서 불렀던 콧노래, 비주얼은 별로여도 스스로 엄지 척 하며 취하던 순간, 맛보는 사람이 좋아할까 고민하던 마음, 나도 해냈다! 식의 작은 쾌재까지.


  2019년을 떠올리면 아마도 머리를 질끈 묶고 감빛의 앞치마를 두른 채 한 소끔 보글보글 끓인 냄비를 열어보는 내 모습이 보일 것 같다. 한 손엔 국자를 들고 맛을 음미하며...


  그 부엌 속에서, 뒷모습에 가려져 있는 나의 얼굴은 분명 환하게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노인'에 관한 사색 - 노인들을 보며 드는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