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기

by ANNA

당연해 보이지만 참 어려운 말이다.


살면서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하면 이상해지는 일들이 많다. (사실 대분이다)

흠.. 예를 들면

팔팔 끓는 물을 가리키며,

'저렇게 팔팔 끓고 있다는 건 아주 뜨거운 것이라는 신호니 절대 손을 넣어서는 안 돼'

라고 주의 주는 경우라면 내가 바보가 되거나 상대방을 바보로 만드는 것처럼..


일도 마찬가지이다.

뭔가에 대해 모를 때

'혹시 이것이 나만 모르는 것일까?'

'괜히 물어봤다가는 바보 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에 질문을 꺼리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바보 되더라도 아리까리 한 부분들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는 게 좋더라는 귀한 교훈을 얻었다.


추석 이후 중국 베이징으로의 인센티브 투어가 잡혀있다.

충청복도에 소도시에 자리 잡은 여행사가 주최하는 투어였는데, 대부분의 지역 여행사와 마찬가지로 지역 인맥을 기반으로 여행 사업을 하는 곳이었고, 줄을 잘 대어 주로 관공서 쪽 일을 받아서 하는 제법 내실 있는 여행사였다.


투어 대상자들을 상대로 열리는 설명회에 참석하라는 (다시 봐도 설명회를 주최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참석하라고 전달받았다) 연락을 받고, 난 당연히 여행사 직원이 설명회를 주최하고 난 인솔자로서 손님들에게 인사나 할 겸 참석하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번의 설명회에 참석한 적은 있었지만, 인솔자가 발표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난 참관자로 참석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게다가 여행사로부터 전달받은 자료도 하나도 없어서 막연히 설명회 때 주려나 하고 생각했었다.


애초에는 곧장 설명회 장소로 가려했지만, 여행사에서는 사무실에 들러 직원들과 인사도 나누고 점심을 함께한 뒤 샌딩 팩을 받아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 보니, 사무실에서 설명회장까지는 약 1시간 40분이 걸려 11시에 식사를 시작하고 11시 30분쯤 출발하는 게 알맞겠다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나는 뚜벅이라 버스를 예매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가고 있는데 카톡이 도착했다.

'잘 오고 계세요? 몇 시쯤 도착할까요?'

'버스 도착이 10시 25분 정도이니 11시 전에 도착할듯해요'

'아.. 그럼 설명회 장소까지 어떻게 가세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드는 것이었다.


'식사 후 대표님이랑 같이 가는 거 아녔나요?'

'대표님은 지금 캐나다로 출장 가셨어요'

갑자기 어질어질 해진다.

여행사 직원들은 내가 당연히 자차를 몰고 오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난 1시간 40분 거리를 어떻게 가야 할까?

나 혼자 가라면 설명회는 대체 누가 주최하는 것일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캐나다에 계신 대표님도 분위기가 수상했는지 결정적인 한마디를 던진다.


'공부는 해 오셨죠?'

그제야 제대로 느낌이 왔다.


내가 설명회를 주최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기에 일단 차근차근 풀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아직 자료 받은 것도 없다고 솔직 고백해서,

뒤늦게 받은 자료로 급공부에 들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출장으로 가는 중국은 처음이다.

10년 전에 개인적으로 갔을 때와는 달리 강산이 뒤집히듯 중국은 격변의 시가를 거쳐 모든 질서와 풍경이 새로 쓰였다는 사실은 풍문으로 들어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진리였다.


일단 직원이 설명회 행사장까지 회사 차로 태워주기로 했기에 교통은 해결되었지만, 문제는 설명회를 주최해야 하는 바로 나인 것이다.

도착한 사무실에도 '쟤를 믿어도 되나?'라는 불안한 기운이 감돌았다.


일단 양해를 구하고 나눠준 책자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나를 소개해 주신 분께서 소개하기를 중국 출장 여러 번 다녀왔다고 한 상황이라 중국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인솔자를 소개할 때 그쪽 지역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뻥은 여행업계에서의 불문율이다)


다행히 안내 자료에는 중국 여행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이 전부 적혀 있어서 안내 책자만 잘 탐독하면 풀어갈 수 있을듯했다.


그리고 여행자들은 관광지에 대해 설명 듣는 것보다,

준비물

쇼핑

환전

소매치기

안전 등등

중국에서 ‘카톡’을 비롯한 여러 SNS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과 이를 풀어낼 방법에 대한 관심이 특히 크다.


그래서 경험을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재미있게 끌고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고, 마이크를 잡는 순간 우려와는 달리 좋은 기운이 전해졌다.

덕분에 급히 준비한 강연이었지만, 50여 분 동안 나름 즐겁고 알차게 진행할 수 있었다.


지켜보던 직원이 설명회 마치자

'이제야 한시름 놓았네요'

라며 안도했을 정도로 비상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론은 인솔자는 설명회를 참관만 하는 입장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혹시 설명회는 주최는 누가 하나요?'

라고 한 번이라도 짚어 줬었으면

내가 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혹시 내가 혼자 가야 하는 상황인지에 대한 고심도 해 보고 의견을 나눴을듯하다.


입장을 바꿔서 여행사 측에서도

인솔자가 설명회를 주최해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설명회는 인솔자님이 주최하셔야 합니다'

라고 한 번이라도 짚어 줬었으면..


양측 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들에 대해 단 하나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질 뻔했던 재앙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후회한들 '만약에'는 없지만

그리고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무사히 마쳐서 마음 편히 글 쓰고 있지만


'업무적인 부분에서는 바보가 될지언정 확실히 짚고 넘어가자'


라는 귀한 교훈을 얻고 느긋한 마음으로 예당호와 청평호를 둘러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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