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조난 당해 소방차 부른 썰

by ANNA

제목으로 유추하자면 초짜 등린이의 조난기로 보이겠지만 참으로 창피하게 난 무려 15년 차 산악인이다.

더 쪽팔리게 경력을 읊어보자면 대한민국 백대명산 및 백두대간도 완등했다. 백대명산은 거의 두 번 이상씩 다녀왔다.


좀 더 쪽팔려 볼까?

해외 트레킹 가이드까지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은 무려 3회 완주했다.


조금 더 민망해보자.

이것은 지리산이나 설악산 비탐방 골짜기도 아니다.

해발 200미터도 안 되는 어느 작은 섬산에서 조난당한 썰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연휴 내내 궂은 날씨에 비를 흩뿌리렸건만, 유독 비정상적으로(?) 화창하게 갠 날이었다.

심지어 산행하는데 덥고 습하기까지 해, 10월 산행에서까지 땀 흘리는 게 말이 되냐며 투덜거리며 걸었지만 경치만큼은 최고였다.


선유도 일대의 세 개의 산을 도는 코스인데, 선유도의 선유봉은 산 가운데를 뚫어 도로를 만들어 선유봉을 가는 것은 큰 의미도 없고 대장도 대장봉을 오르고 장자도 호떡마을을 거쳐 신시도로 버스 타고 갔다.

시간이 제법 남아 삼합에 소맥 캬 들이키고 호떡마을 명물 씨앗 호떡 하나 사서 종이컵에 든 호떡 냥냥 베어무는 여유를 부리며, 마무리 트레킹으로 몸이나 풀어볼까 했더랬다.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섬 세 개를 다녀왔다고 해서 배를 타거나 대단한 거리를 걸은 것은 아니고, 코딱지보다 조금 더 큰 섬들을 한강 다리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다리로 이어놔서 살방살방 오가며 트레킹 했다.

신시도까지는 차로 10분 거리라 걸어도 되겠다만 버스로 이동하여 해발 198미터의 (그래도 이날 탄 산 중 가장 높은 해발 고도였다) 귀염둥이 산을 산행했다.


주어진 시간은 단 한 시간

정상까지 가는 길도 어렵지 않았고 정상에서 인증사진 찍고 하산만 하면 그날의 산행일정은 끝나고 심지어 서울로도 빨리 귀경하는 살방살방 코스였다.


정상에서 내려오던 중 대단하게 생긴 바위 하나를 거쳐 사진에 진심인 중년커플이 사진 찍고 있는 방향으로 향했는데, 그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그곳은 그저 포토스팟이었는데 사람이 있어서 그쪽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분들이 열심히 포즈 잡고 사진 찍고 있는 포토스팟에서 길을 찾으니 길처럼 보이는 게 없다.


'어디가 길이예요?'

'여기가 아닐까요?'

가르쳐준 곳은 덤불이 무성했지만 그래도 그 부근에서는 가장 길처럼 생긴 보이는 곳이었다.


경사는 가파르고 길은 길이지만 사람이 다닌 흔적이 오래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인 등산로로 믿었던 이유가 10월이긴 하지만 여름의 흔적이 진하게 남아 있는 듣보잡 산의 트레일은 정상적인 등산로조차도 정글이었다.

경사는 깊고 길은 험했다.

걸으면서 보이는 바닥은 거의 절벽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바닥만 닿으면 갈 수 있겠거니 하며 걸어가도 어느 순간 거의 굴러가고 있는 수준이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순간

길이 사라졌다.

그리고 사진 찍던 중년 커플은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은 이미 온통 가시덤불뿐


가시덤불을 헤치며 그래도 코앞에 보이는 바닥에 닿으면 버스 탄다는 일념 하나로 가시에 긁히고 옷은 찢어지며 그렇게 다다른 곳은 바닥이 아니라 절벽이었다.

오른쪽 왼쪽을 가도 사방이 절벽이다.

원래는 등산로가 있었던 곳을 도로를 내느라 산을 깎으면서 도로가 접한 부분은 죄다 절벽이 된 것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허탈할 수가 있을까?


안다.

조난을 당했을 때는 왔던 길을 되짚어가서 정상으로 올라가면 오히려 쉽다.

다 아는 사실이고 침착하게 정상으로 가면 되지만 앞은 절벽 그리고 뒤는 가시덤불이다.


거의 굴러왔다시피 한 저 가시덤불길을 다시 걸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기를 굴러 내려가면 최소 장애인등급은 받을듯한 절벽을 앞에 두니,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눈물은 통곡으로 이어졌다.

내가 멈춰 통곡하는 사이 모기들은 이게 왜 맛난 먹잇감이냐며 승냥이처럼 내 몸을 물어뜯었다.


산에서 길을 잘못 들었어도 어찌하든 바닥으로 내려오면 된다는 믿음도 무너지고, 우습게 알던 섬산행에서 이런 꼴을 당했다는 것이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결론은 119 불렀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

나 하나 구조하기 위해 소방차 두대에 구조대원 다섯 명이 투입되었더라.


그로부터 며칠 뒤

소방관들을 모시고 중국을 다녀온 건 운명일까?


이날의 에피소드는 소방관님들과 목욕탕 의자에 앉아

'이런 인솔자가 소방관님들을 모셨네요'라는 드립으로 히히낙낙 안주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전 세계 명산을 정복할 거라며 자신만만 용기백배하던 산악인은 한 단계, 아니 아니 열 단계 더 겸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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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난당하기 전 대장봉에서


곧 죽어도 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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