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여름, 운명이 토익 시험지 위에서 갈렸다

턱걸이 점수 하나가 만든 기적 같은 전환점

by ANNA

네이버에서 각종 자격증 시험에 대해 검색을 하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정보가 시험 전형 일정이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시험의 원서접수일은 다행히도 3주 정도를 남겨 놓고 있었다.

아아, 이것이 얼마나 천운인가? 나란 여자는 어찌 이리 하는 일마다 행운이 뒤따르는가?

가슴을 쓸어내리던 중 원서접수 자격을 보다 경악을 했다.


토익 760 이상..

토익이란 대체 뭔가요?

영어공부는 좀 했다지만 회화위주의 영어공부였다.

영어 잘하면 토익 900은 거뜬히 넘는 거 아닌가요?

개뿔 같은 소리

말하는 실력, 듣는 실력, 시험 치는 실력 등등 언어에 관한 능력은 열 손가락도 넘칠 정도로 세분화되어있다.

토익 900을 넘어도 영어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쏼라쏼라 원어민처럼 말해도 토익 500 못 넘기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어학이라는 장르는 시험용과 실전용이 확연히 구별된다.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영어선생님들에게 토익을 치게 해 봤더니 평균이 700 초반이라며 언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얼마 전 갔던 소방공무원 연수에서 그룹 대장이 나에게 슬며시 오더니 말을 꺼냈던 일이 기억난다.

'제가 정년이 2년밖에 안 남아서 은퇴 후 할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저 사실 영문학 전공했거든요'

'엥?'

그제서야 교관과 영어로 소통할 때 옆에서 제법 알아듣기도 하시고 더듬더듬 영어로 거들길래, 오 나이 드신 분이 영어 좀 하네~ 이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은퇴대비로 관광통역사를 알아보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토익을 쳐 봤어요. 그런데 300점대가 나왔더라구요'

-_-;;

이게 현실임




어쨌거나 원서 접수에 앞서 토익 점수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토익접수부터 해야 했는데, 시험 치고 열흘이 지나야 발표가 나는 구조라 시험 칠 수 있는 기회는 단 두 번

마지막 시험은 일반 접수, 삼 일 후 있을 시험은 접수 마지막 날 아슬아슬하게 추가접수를 마무리했다.


아무 준비 없이 실력 테스트 할 겸 가벼운 마음으로 첫 번째 시험을 치렀다.

와..

뭔 소리를 듣는지 뭘 읽는지도 모르고 치른 시험은 치는 내내 멘붕이었고, 다음 시험도 같은 상태라면 분명히 불합격이라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남은 일주일의 시간 동안 각종 토익 실전 문제집을 사서 지난 기출문제들을 풀고 또 풀었다.

뇌에 쥐가 날 정도로 듣고 읽고 문제를 풀었지만, 체점할때마다 좌절하고 고꾸라졌다.

가채점한 결과는 760이라는 목표가 요원해 보였다.


일주일을 토할 정도로 토익 문제만 풀고 비장한 각오로 시험장에 들어섰다.

이제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두 번의 시험을 치른 후 첫 번째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는데, 710점..

두 번째 시험에서 760 넘지 못하면 꼬박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절박했다.


관광통역 안내사 원서 접수 불과 며칠 전

결과 발표되는 시간 즈음 화장실에 앉아 새로고침을 해가며 떨리는 마음으로 토익 시험 결과를 기다렸다.


788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해냈다!

나 시험 칠 수 있다!

비록 턱걸이지만, 턱걸이라도 어쩔

기쁜 마음으로 당당하게 관광통역사 원서접수를 했다.


이때 토익 시험에 합격하지 못했더라면, 원서접수의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 어영부영 일 년 공부하다가 다음 해에 도전했겠지

이때가 2018년

다음 해인 2019년 말에 어찌어찌 합격을 했더라도 2020년에 초에 불어닥친 코로나의 저주로 관광업계에 발도 못 들여보고 끝났을 뿐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여행사 창립도 꿈도 못 꿀 일이 되었으니 이때의 토익점수 달성이 내 인생을 바꿨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토익은 시작이었을 뿐

정신 차려보니 필기시험이 코앞인 데다, 면접시험까지 준비해야 하는 산 넘어 산이었다.


아이고,

이 난관을 또 어찌 극복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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