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에 시작해 반찬값으로 마무리된 하루
합격은 했지만, 여전히 알바를 전전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좀 일 같은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함은 점점 커져갔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관광통역안내사 시장도 이미 포화 상태였고, 초짜인 데다 나이까지 많은 가이드를 쓸 여력이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학원에서는 합격생들을 대상으로 실습을 병행하는 실무 프로그램을 열었고, 발 넓은 학원장님의 인맥으로 국내 인바운드 여행사들의 오퍼를 받을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고민 끝에 학원 실무반에 등록했다.
수많은 오퍼가 왔지만, 그중에서도 외국인을 상대하는 대형 인바운드 여행사에 유독 마음이 끌렸다.
지원 이유는 단순했다.
주요 관광지를 직접 돌며 현장 실습을 거쳐 선발한다는 것.
그리고 선발되지 않더라도 관광통역안내사의 ‘진짜 기술’을 공짜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그건 어떤 지식보다 값질 것 같았다.
그렇게 열 명 남짓한 멤버가 모였고, 우리는 곧장 실무 중심의 현장 실습에 투입됐다.
그리고 우리를 담당한 사람은 중동 왕자님 급의 최상위 VVIP만 전담한다는 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이었다.
감히 위를 올려다보기도 주저되는 어떤 거대한 아우라를 가진 사람을 마주한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이건 진짜다. 제대로 배울 시간이 왔다.”
때는 2018년 12월 말에서 2019년 1월 초.
한반도의 겨울이 원래도 만만치 않지만, 그해는 왠지 유난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몸이 먼저 움찔한다.
“아, 이게 바로 살을 에이는 추위구나”를 머리가 아니라 피부세포 하나하나가 깨달았던 시기였다.
DMZ에서, 경복궁에서, 광장시장에서, 인사동에서.. 실습지는 백퍼 야외, 그 혹한 속에서 실습을 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멘트를 하는데, 문제는 입이 얼어붙어 발음이 녹아내렸다는 거다.
혀는 ‘한국사’라고 말하고 싶은데 입술은 ‘하구써’ 수준.
저체온증과 관광영어가 싸우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관광통역 일을 간절히 하고 싶었지만, 습도가 높아 겨울엔 칼바람, 여름엔 찜통지옥이 펼쳐지는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란 의심이 무한 반복되었다.
“내가 직업을 찾은 건지, 직업이 나를 시험하는 건지...”
결국 실습을 진행하던 회사에서 바로 일을 따내진 못했다.
하지만(인생이 늘 그렇듯) 실습생들을 총괄하던 회사 이사님이 다른 인바운드 여행사를 소개해준 덕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길이 열렸다.
그리하여 외국인을 상대로 한국을 관광시키는 인바운드 투어 가이드로 관광업 커리어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파주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시청과 광화문 인근으로 출근해 근처 호텔들을 순회하며 손님들을 픽업한 뒤 반나절 투어를 진행하고, 막바지엔 인삼 또는 자수정 판매 매장에서 투어를 마무리하는, 그 유명한 한국형 인바운드 루틴의 반복이었다.
일은 꽤 일찍 끝나는 편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의 생활권 따위와는 전혀 인연 없는 지역이었기에 손님들 내려준 후 광화문에서 퇴근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보통 저녁이 가까워지는 오후였다.
다음 날 팀이 잡히는 날이면 더욱 바빴다.
투어가 확정되는 시간은 저녁 8시경이었기에 그 시간까지 긴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투어 단톡이 결성되면 버스 기사님과 약속 장소·시간을 조율하고, 손님 픽업 동선을 짜고 그제야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알람이 울리기보다 피로가 먼저 깨우는 새벽 기상.
또 그다음 날도.
이렇게 반복되는 하루들.
투어지도 거의 데자뷰였다. 경복궁, DMZ 그리고 가끔 변주로 조계사, 인사동...
'돈을 벌며 전국을 돌아다닌다'는 친구의 말에 혹해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땄고 그토록 원했던 일을 시작했지만, 돈은 쥐꼬리만큼 벌었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쥐꼬리만큼의 뜻은 반나절 투어에 주어지는 일비는 단돈 6만 원
손님들이 쇼핑센터에서 비싼 인삼이나 자수정을 사줘야 생기는 부수입으로 생계는 유지할 정도로 벌겠다마는, 영어 관광통역사가 담당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백인들이거나 동남아인들이다.
알다시피 백인들은 지갑을 열지 않는다.
동남아 손님들은 쓰고 싶어도 돈이 없다.
나도 문제였다.
생전 무엇인가를 팔아본 적이 없어서 그저 손님들을 쇼핑몰에 떨궈놓기만 했으니 매출이 나오겠나?
그럼 결과는?
거의 매일 쇼핑 매출 꽝!
반나절 동안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다니고, 멘트를 목이 쉬도록 날리고, 사지도 않을 손님들 눈치 보며 쇼핑센터 데려가며 애간장을 태워도 남는 건 반찬값 정도.
이게 진짜 맞나?
나 지금 인생에서 어디로 가는 중이지?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에 오면 저녁.
거의 12시간을 밖에서 보내도 손에 쥐는 금액은 최저임금의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사람인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꿈을 좇은 게 아니라, 꿈이 나를 괴롭히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 채용 공고를 훑어보는 중 눈이 번쩍 뜨였다.
“해외여행 인솔자 모집.”
관광통역사 자격증을 따면 해외인솔자 자격증은 신청만 하면 발급되는 구조라 미리 받아둔 상태였다.
그때는 그냥 ‘있으면 언젠가 쓰겠지’ 하고 받아뒀는데, 그 언젠가가 지금 눈앞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될까?
된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을까?
지난여름부터 이어진 길고 숨 막히고 좌절과 멘붕이 수시로 치고 들어온 시간들을 다 참아냈는데, 이 정도 지원쯤이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지원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것.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설마… 정말?”
해외인솔자는 네팔 안나푸르나에서 처음 꿈꾸기 시작해 나를 이 기나긴 여정으로 끌어온 그 원래의 꿈이었다.
관광통역사도 좋지만 나는 애초부터 전 세계를 누비는 인솔자를 꿈꾸지 않았던가?
한동안 꿈꾸지도 않았던 꿈이 다시 나를 찾아온 느낌이었다.
치열한 현실 속에서 잠자고 있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꿈을 등에 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