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에서 유럽까지, 나의 첫 ‘해외여행 인솔자 호출’

간절함이 이끈 스페인행 티켓

by ANNA

시청 근처에 있는 해외인솔자 공급(?) 여행사로 면접을 보러 갔다.

이미 관광통역사 실기까지 겪어낸 멘탈이라 그런지, 이번엔 이상하리만큼 떨리지 않았다.

면접 보러 왔다고 말하고 안내받은 방에 들어가니 나 혼자가 아니었다.
서너 명이 먼저 와 있었고, 그중엔 관광통역사 학원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도 몇 눈에 띄어 쑥스러운 마음으로 짧게 인사를 건넸다.


십여 명의 면접자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진행한 그룹 면접
회사 이사님이 직접 진행했고 분위기는 예상외로 화기애애했다.
질문도 가볍고 대화도 부드럽게 흘러갔다.


관광통역사 일을 할 때는 ‘할까 말까’하는 시큰둥한 마음이 조금 있었지만, 해외 인솔자만큼은 정말, 진심으로 합격하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 흘러온 모든 과정이 결국은 하나의 단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해외여행하며 돈 번다.
그 꿈같은 한 줄의 문장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마음 한켠에서는 간절히 일을 하고 싶었지만, 나이대를 생각하면 “과연 내가 붙을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던 차에 걸려온 반가운 전화.


“합격했습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꿈에도 그리던 해외 인솔자 업무라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유럽 하늘을 날고 있었다.


곧바로 인솔자 교육이 있다고 하여 지정된 장소에 가보니 면접장에서 봤던 멤버들이 거의 그대로 와 있어서 다들 실소를 터뜨렸다.


진입장벽이 그리 높지 않은 입사였던 것이다.




교육을 받으며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해외 인솔자의 실체를 정확히 알게 되었고, 나 같은 ‘나이 있는 지원자’가 왜 뽑혔는지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88 올림픽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시작된 해외 인솔자 직업은 30여 년 동안 여러 단계를 거치며 큰 변화를 겪어왔다.


특히 이 회사가 주력으로 하던 스페인은 모예능 프로그램 덕분에 한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몰리던 시기였다.

땅덩어리는 넓고 도시마다 볼거리는 넘쳐나서, 서유럽이나 동유럽처럼 특정 도시에서만 가이드가 붙는 구조도 아니라 스페인 패키지는 공항에서 손님을 맞는 순간부터 다시 공항에서 배웅하기까지, 한 명의 가이드가 전 구간을 책임지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인솔자는 본래 역할을 잃고 그저 의전용 조력자 정도로 축소되어 있었다.

실제 업무는 단순했다.
식당 자리 배치하고, 호텔 체크인 돕고, 인원수 세고..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 잘하고 손님들 비위 맞춰주기

쉽게 말해, 관광의 핵심은 가이드가 하고, 인솔자는 가이드의 비서 역할을 충실히 하는 형태였다.


업무는 단순했기에 일비는 고작 10만 원.
9일짜리 스페인 패키지를 다녀오면 90만 원을 버는 구조였다.

말로만 들으면 해외여행을 싸게 다녀오는 셈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박식한 고스펙 인솔자가 필요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 상대에 노련하고 눈치 빠르고 인생 좀 살아본, 즉 연륜 있는 인솔자가 더 유리한 카드였다.

어차피 가이드 비서 역할이 주 업무라면 기본적인 영어까지 되면 금상첨화이니, 당시 남아돌던 관광통역사 출신들까지 한 번에 쓸어모았기에 나 같은 사람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발탁된 셈이었다.


그제야 내가 합격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해가 갔다.




그런들 어떠랴?
업무가 무엇이든, 돈을 얼마나 벌든
나에게 중요한 건 ‘해외로 나간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입사 동기들과 단톡방이 결성되었고, 다들 처음이라 불안해하면서도 정보 공유하고 위로해 주는 그 공간은 이후 1년 동안 스페인을 오갈 때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단톡방에 동기들의 배정 소식이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 배정받았어요!”
“저도요!”


나는 여전히 대기 중
‘도대체 나는 언제...?’ 하고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반가운 톡 하나가 도착했다.

카타르항공 스페인/포르투갈 9일
드디어 나의 첫 팀이 배정된 것이다.

이 상품은 대형 여행사에서 밀고 있던 가성비 좋은 최고 인기 라인업이었고, 내가 이후 1년 동안 스페인을 제집 드나들듯 반복하게 된 그야말로 ‘효자’ 코스였다.


그토록 애태우며 “빨리 좀 배정해 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외쳤건만, 막상 배정이 되자 또 다른 감정이 밀려왔다.

긴장, 두려움, 그리고… 설렘.

과연,

나는 이 일을 무사히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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