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 앞에서는 전문가, 마음속에서는 초보였던 그 순간들
첫 투어에 앞서 회사에서 실무자에게 간단한 교육을 받았는데, 기본적인 업무는 단체교육 때 이미 받았기에 대부분 도하 하마드공항에서의 환승절차에 관한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별 필요 없는 패키지투어의 인솔자를 적지 않은 금액을 들여 손님들과 함께 외국으로 보내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공항 환승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방향감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길치 of 길치’라는 사실이다.
평소에도 길치인데 실내만 들어가면 남아 있던 감각마저 증발해 버리는 타입.
그중에서도 최고난도의 공항은 나를 가장 쉽게 바보로 만드는 공간이다.
하마드 공항은 규모가 워낙 크고, 공항 내부를 오가는 트레인까지 있어서 환승이 초보 인솔자에게는 꽤 난이도 높은 미션이다.
교육 담당자 왈
“트레인을 타고 곰돌이를 만나면 거기서 사진 찍을 시간 주면서 자유시간을 드리고 다시 집합시켜 어디로 이동하고..”
머릿속엔 하나도 그려지지 않았다.
트레인은 무엇이며 곰돌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방향감각은 이미 도하 상공에서 증발한 지 오래였다.
그때 동기들의 단톡방이 구세주 역할을 하였다.
바보 인증 같아 선뜻 질문하기 어려운 회사 담당자와는 달리 이미 경험해 본 인솔자들도 제법 있는 데다 인솔자 베테랑까지 있는 톡방이라, 그들의 생생한 꿀팁, 직접 찍어온 사진, 지하철 노선도처럼 정리해 준 동선까지..
선배들의 경험담과 실전 팁은 그 어떤 공식 뉴얼보다 현실적이었다.
교육에서 가장 강조받은 것 중 하나는 절대로 초짜 티를 내지 말 것! (아무리 연기해도 결국 손님들은 다 눈치챈다)
여행사 홈페이지에는 '전문인솔자 대동'이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 특유의 감정이라는 것도 있다.
일을 잘하든 못하든, 초짜가 배정됐다는 사실만으로 왠지 손해 본 느낌이 드는 것이다.
손님들과의 첫 만남은 출발 전 진행하는 해피콜에서 시작된다.
말이 해피콜이지, 사실은 첫 손님들과의 공식적인 인사이자 나에게는 일종의 멘탈 테스트였다.
스페인/포르투갈 패키지 상품의 일정을 외울 정도로 숙지하고 각종 블로그와 유튜브 등을 찾아 헤매며 만발의 준비를 다 한 후, 조용한 시간대를 골라 노트북 앞에 앉아 종이와 펜을 준비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심호흡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어도 전문가인척 해야 한다.
하지만 손님들은 질문이 많고 일반적인 패키지여행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다 답해주기 힘든 상황이 자주 왔다.
그럴 때는 일단 아는 척 대답해 주고 가이드에게 묻거나 열심히 검색해서,
"아니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그새 바뀌었네요. 호호호" 이럼 써 정정하는 식으로 생존해 갔다.
두 번째 미션은 여행사 방문이었다.
보통 출발 이틀 전에 진행되는데, 소속 회사가 대형 여행사의 하청업체, 즉 ‘을’이다 보니 방문 자체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교육에서도 늘 강조했다.
“그분들은 신처럼 모셔야 한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담당자를 만나 서류를 받고, 배운 대로 하나하나 체크했다.
영문명 확인, 일정 검토, 필요 서류 점검..
모두 끝나면 여행일정을 손님 수만큼 복사해 네임택과 함께 ‘센딩팩’에 넣는다.
그렇게 여행사 업무는 종료되고, 이제부터는 진짜 인솔자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 보따리 싸기.
그리고 미팅 시간보다 훨씬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아직도 생생하다.
2월 말, 유난히 스산했던 그 늦겨울 공기.
딸의 중학교 입학식도 챙겨주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은 한없이 복잡했다.
미팅 테이블을 잡고 쏙쏙 도착하는 손님들에게 센딩팩을 나눠주고 센딩팩의 내용과 환승절차에 대해 설명하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내가 제대로 설명은 한 건지 손님들 인상착의가 어떤지 하나도 기억 안 날 정도로 머릿속은 백지화가 되어 손님들 전부 도착 확인 후 기진맥진하여 게이트로 향했다.
게이트 앞에서는 이미 수십 번 이 일을 해본 듯한 베테랑 인솔자들이 여유롭게 서 있었다.
포스가 달랐다.
‘얼마나 일을 반복해야 저들처럼 보일 수 있을까?’
어깨를 펴 보지만, 펴는 만큼 더 굳어지는 내 표정과 몸
그리고 마침내
나는 첫 투어를 향한 여정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