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업계의 이상한 권력 구조

여행업계 병아리 인솔자가 처음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

by ANNA

처음 인솔업에 뛰어들었던 2019년

그 당시에 별다른 여행업 경험 없이 해외인솔자일에 처음 뛰어들었다고 하면 백퍼 일비 받는 인솔자였고, 그 중 가장 만만한곳은 스페인/포르투갈이었다.


유럽여행 패키지라고 하면 서유럽 5국 9일, 동유럽 5국 9일같은 상식적으로 이해 불가한 상품들이 일반적인 이유가 그 당시 한국사람들이 유럽으로 여행갈때는 내가 이 먼곳을 다시 언제 와 보겠니? 이러면서 짧은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나라를 볼 수 있는 상품을 택했던 것이 그 이유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유럽국가의 특성상 오밀조밀 몰려 있었던 이유가 컸고, 같은 EU국가로써 입국심사 없이 각 나라를 제 집 드나들듯이 쉽게 왔다갔다 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거리 버스를 타고 하루에 한 나라 한 도시를 딱 한시간 둘러보는게 전부였던 그 시절

이 기본적인 룰이 절대 적용되지 않는 나라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스페인이었다.

일단 스페인이 위치한 이베리아 반도의 면적이 정말 넓다.

유럽에서 종일 버스를 달려 나라 하나의 국경을 넘을 수 있지만, 스페인에서는 종일 버스를 달려 겨우 관광지 도시 하나만 찍을 뿐

거기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세비야, 그라나다 등등

그 넓은 땅덩어리에 그것도 넓직하게 분포해 있는 도시 어니 하나도 빼 놓을 수 없는 걸작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숨가쁘게 이동하며 관광하기 벅찬데, 스페인 한 나라만 보자고 하기 민망하여 슬쩍 끼워놓은것이 동쪽 끝에 주먹쥔 손가락의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위치한 포르투갈이었는데, 포르투갈은 그야말로 '계륵'

리스본과 파티마를 단 하루만에 찍고 다음날 다시 숨가쁘게 스페인으로 움직인다.




다시 돌아와서 서유럽과 동유럽의 경우를 보자.

일단 가이드는 그 나라 언어에 능숙해야 한다.
그렇기에 유럽 어느 한 나라에 사는 가이드가 다섯 개국의 언어를 모두 마스터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효율적으로 나라마다 혹은 도시마다 하나의 가이드만을 부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버스에서의 설명이나 기타 멘트는 인솔자가 커버하고, 그 나라나 도시에 도착하면 그곳에 사는 가이드가 합류해 그 지역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안내를 맡는 것이 일반적인 구조였다.

인솔자와 가이드는 기본적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옵션이나 쇼핑 수익도 서로 나누는 구조였고, 동등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이드에게 팁을 건네는 사람이 인솔자이기 때문에 인솔자가 갑이라는 말도 은근히 돌곤 했다.


이제 스페인의 경우를 보자.
스페인에서는 90퍼센트 이상의 가이드가 마드리드에 살고 있다.
어차피 언어가 통하는 한 나라를 도는 일정이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도시마다 가이드를 따로 부르기보다는, 차라리 한 명의 가이드가 그 팀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다.
그렇게 스페인에서는 자연스럽게 모든 전권이 가이드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공항에서 걷은 공동경비 또한 한 푼도 빠짐없이 고스란히 가이드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모든 일정 관리와 옵션 예약, 기사와의 소통, 쇼핑 진행 등등 여행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일은 가이드의 권한 아래에서 지휘되고 움직였다.

그 모든 힘든 일을 맡아 하는 대가로 옵션 수익 역시 대부분 가이드에게 귀속되었고, 일비를 받는 인솔자는 어느 순간 그들의 비서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다.

인솔자가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손님들 의전, 옵션이나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잘 팔기 위해 손님들 분위기를 살짝 부추기는 일, 그리고 기본적인 업무인 인원수 세기, 식당 자리 배치, 호텔 체크인 시 방 배정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일은 분명 훨씬 쉬워졌지만 그들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에는 미묘하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돈을 많이 벌면 버는 대로, 적게 벌면 적게 버는 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협업하며 팀을 잘 이끌어가면 되는 일이었는데 가이드의 권한이 점점 커지다 보니 어느 순간 갑과 을의 관계가 또렷해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그 관계는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능업계의 마이더스 손이라 불리던 한 PD가 스페인을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들을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냄비근성의 한국인들은 또 한 번 들썩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너도나도 스페인으로, 스페인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히 가이드와 인솔자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인솔자 자리는 막 여행업계에 데뷔한 병아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스페인에 살던 교포라면 누구에게나 '가이드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민박집 사장, 한식집 아줌마, 태권도 학원 관장, 미용실 사장님까지 너도나도 가이드라는 타이틀을 달고 스페인 여행업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급하게 채워진 인력이니만치 동유럽이나 서유럽 가이드들이 대부분 갖고 있던 가이드 자격증 따위는 애초에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간단한 멘트 몇 개만 준비한 뒤 선배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해야 옵션을 많이 팔 수 있는지, 쇼핑에서 수익을 올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인솔자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을 전수받으며 현장에 투입되기 시작했다.


물론 제대로 배우고 손님들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대하는 가이드들도 분명히 있었고, 인솔자들을 같은 동료로 인간적으로 대해주던 분들과는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연락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일단 마이너스를 안고 시작해야 하는 랜드사들은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주는 가이드들에게 점점 더 많은 혜택을 주기 시작했고, 잘 파는 가이드에게는 좋은 팀을 안겨주고 실적이 좋지 않은 가이드에게는 이상한 칼라의 팀을 넘기거나, 다른 가이드들이 채가고 남은 그룹만 어쩔 수 없이 넘겨주는 식으로 가이드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어떻게든 수익을 남겨야 했으며 인솔자들은 그 틈새에서 수익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실적을 올리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다.

웃지 못할 이야기들도 있고, 아직도 떠올리면 씁쓸해지는 사건들도 있다.

그리고 인솔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수 많은 장면들..


다음 이야기에서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월요일 연재
이전 05화귀인을 만난 날, 판이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