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민주주의

오랜만의 글쓰기

by 윤담



양재역에서 퇴근하는데, 문득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앞으로 가야할 길과 가치관에 대해 답을 내려본 적이 없었다. 1년째 재직중인 회사에서의 내 존재감과 내 인생에서의 현재 위치는 괴리감이 크다. 발전이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1년째 하면서 다니는 중이다.


집에 오는 길에 기운을 내고자 생각을 전환했다. 이 회사는 어차피 내 인생의 민들레 홀씨같은 존재이며, 나는 눈에라도 띌 수 있게 좀더 꽃의 크기를 키워보자고. 피곤하다는 핑계가 나를 더욱 작은 모습으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구독하게 된 문학동네 잡지를 찬찬히 살펴보는데, 이런 문구가 있었다.


[지배 세력의 권위를 존중하고 기존의 규범들을 존중하는 '착한 시민'들만을 '우리'로 결집시키고, 그밖의 모든 형태의 인민들을 '우리'와 다르게 준동하는 반국가 세력인 '그들'로 간주하면서 노동 혐오, 여성 혐오, 장애 혐오, 빈곤 혐오, 외국인 혐오, 어린이 혐오 등을 부추기는 흐름, 인민들이 서로가 서로의 이익을 불법적으로 탈취하려 한다고 믿고 그 사악한 누군가를 색출하고 증오하도록 조장하는 흐름, 토론과 협의로 이어져야 할 대립과 갈등을 적대와 혐오로 대체하고 사회 전체를 인민들 간의 내전 상태로 몰고 가 정치를 질식시키는 흐름, 그러는 사이 시장의 지배만큼은 결코 건드릴 수 없는 자연의 원리로 수용하게끔 강요하는 흐름. 바로 이 흐름을 멈춰 세워야 한다.]


내가 초등학교 때 썼던 글쓰기 내용이 생각이 났다. 내 눈높이는 이만큼 자랐는데 내가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은 초등학생 때 썼던 문장보다도 형편 없다.


그것뿐 아니라


[너무나 협소해진 '우리'를 더 많은 존재들과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도록. 고통받든 말든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간주했던 '그들', 심지어 '우리'의 이익을 침해하기 때문에 고통을 줘야 마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그들'이 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존재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들과 함께 살아왔고 그들 없이는 우리의 삶도 있을 수 없으며, 어떤 경우도 그들의 고통이 그들만의 것으로 한정될 수 없고 그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범람하고야 만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거기에 아름다운 화합과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거기에는 벌써 그리고 영원히 대립과 갈등이 남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세상이 왜이렇게 팍팍해졌을까, 싶은 이유도 이 문장들에서 해소가 되었다.

숏츠에 갇혀버린 우리는 너무 협소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나마 낙관적인 부분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 간섭은 적어졌으나, 이해심이 줄어 조직의 온기는 더욱 차가워졌다. 기후는 뜨거워지고 우리는 차가워진다. 우리는 제각각 자라고, 섞이는 것이 미숙하여, 우리 안에서 보고 들은 한계를 뛰어넘지 못해 물리적으로 너무나 편리해진 세상을 보다 팍팍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곧 40대인 내가, 그리고 나와 같은 중간 세대들은 이런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다면 용기내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인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나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것도 행동인 것 같다.


여름밤은 유난히 피곤했지만, 문학동네의 이 문구가 노트북을 켜게 만들었고, 너무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리니 마음에 안드는 이야기만 써지긴 하지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의미있는 오늘의 브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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