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시간이나 야근을 했다. 원래 정시에 퇴근한다고 하면 오후 7시, 2시간 야근했으니 9시가 좀 넘어서 회사를 나왔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 도착하니 10시가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역을 나오자마자 허벅지부터 시리기 시작했다. 12월 말이나 되어서야 찾아온 영하의 날씨다. 낮에는 비교적 따뜻했으나 내일 더 추워지려는지 바람이 시리다.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데, 오늘 아침 신랑 손잡고 출근했던 기억이 잠시 스쳐간다.
요즘 이사를 준비하고 있어서 친정식구들은 부동산 얘기만 나와도 어디서 공부했는지, 주워들었는지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주기 바쁘다. 특히, 남동생과 아빠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내 이사에 관여하고 있다. 남편은 이사에 관심이 없어서 잠자코 들어주고만 있고, 나와 가족은 만날 때마다 토론 그 자체다. 사실 토론이라기보다 나의 가벼운 지식이 뭇매를 얻어맞는 자리긴 하다. 그런데 아침에 신랑이 했던 말이 뜻밖에 충격이었다.
"장인어른이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실 것 같애. 너는 이사가고 싶어서 부동산 이것저것 알아봐서 물어보고 이야기하는데 나는 가만히 있잖아."
우리 신랑이 그렇게 이야기할 줄 몰랐다. 우리 아빠는 우리 신랑한테 나를 시집보내서 평생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신랑도 그걸 알 줄 알았는데. 풀죽은 신랑 얼굴을 보니 마음이 또 아팠다. 이상하게 신랑 얼굴이 안 좋으면 내 기분도 안 좋다. 항상 웃기만 했으면 좋겠다.
"한심하게 생각하길 뭘. 아빠가 오빠 얼마나 좋아하는데."
사실 나도 아빠 마음을 모르기 때문에 대충 대답했다. 우리 아빠 마음을 어찌 알겠어. 그냥 아빠는 자기 마음대로지 뭐. 그냥 다음부터 부동산 얘기를 안하고 잠자코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게 갈등이 될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내 옆으로 사람들이 쌩쌩 지나가며 술향기를 풍겼다. 나는 술을 일절 마시지 않는데도, 찬바람에 외투에 진하게 배어있는 술향기를 보면 뭔가 포근한 느낌이다. 아마 어릴때 아빠가 술먹고 와서 안아줬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어서일까, 싶다. 지금은 아빠 술먹는 것만 봐도 지긋지긋한데, 아마 그때는 마냥 좋았겠지.
난 진짜 아빠가 싫고, 이해가 안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 아빠는 장점이 정말 많은 사람이어서, 가여운 마음도 있다. 지금은 미워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아빠가 내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그럼 진짜 많이 사랑해줄 자신이 있다.
그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찬바람과 함께 눈물을 닦으며 집에 도착했다. 나의 귀여운 병아리들이 늦은 시간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래서 야근을 하기 싫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 좀 지치겠지만, 퇴근하고 와서 보는 우리 아가들 얼굴은 나에게 가장 큰 위로다.
빨리 애틋한 감정이 없어지기 전에 기록해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느낌과 생각을 좀더 정확히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이게 한계라서 글을 잘 안 쓰게 된다. 나에게는 발전이 너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