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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nina Nov 07. 2020

힘들 때 듣고 싶은 말 한마디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의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 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내가 만약>


마음속 즐겨찾기 시 중 한편이에요. 누군가의 이런 마음, 그 덕에 제가 지금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이런 마음으로 살려고 해. 사람들과 편안하고 좋은 기운 나누면서요.


특별하진 않지만 누군가의 인사가 고마웠던 적 있지 않으세요? 전 많아요. 눈빛, 미소, 몸짓, 말 한마디. 인사만으로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운을 알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여섯 살 아들도 어린이집 가는 길에 교통안전 봉사하시는 어르신과 인사를 나눠요.


     "오늘 빨간 바지 멋있네"


그런 몇 마디요. 녀석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입이 나왔다가도 으쓱하며 웃기도 하죠.

빨간바지 입은날 / 비둘기와 인사 "비둘기들아, 차 오기 전에 도로에서 어서 나와" / "비둘기들아, 어서~"


그런 찰나도 서로의 존재를 알아봐 주고 살아갈 힘을 준다고 생각해요.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 지는 공기에 몸도 움츠러들면서, 마음에 온기가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요즘이에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마음의 온기를 지키고 싶습니다.


어제, 지금 일하는 곳에서 연탄배달 봉사를 했어요. (연탄을 때는 집에서 살긴 했는데, 연탄배달은 처음이었습니다) 저와 동(洞) 환경정비를 함께 하고 계시는 어르신 몇 분도 같이요. 다른 봉사자들은 대부분 대학생이었어요.


연탄을 때는 집은 전국에 10만 가구이고, 근로활동을 못하시는 80대 이상 어르신들이 많으시대요. 연탄 한 장은 800원, 3.65kg. (올해는 코로나와 몇 가지 사회적 이슈로 예년보다 연탄 기부가 3분에 1로 줄었답니다.)


연탄은 홀로 계시는 어르신들께 전해드렸어요. 차가 들어가지 않는 좁은 골목 안쪽 집들이어서, 봉사자들이 줄지어 서서 파도타기 하듯, 연탄을 한 장 씩 손에서 손으로 옮겼습니다. 아무리 AI시대라지만, 연탄 배달할 땐 그 순간 그곳에 있는 사람 손 하나가 귀하더군요.


연탄 한 장 3.65kg은 신생아 무게랑 비슷해요. 생각보다 무겁구나, 이 한 장이 어르신들 따뜻한 하룻밤인데 떨어뜨리지 말아야지 하며 초집중했죠. 연탄만 바라보며 평소 쓰지 않던 근육까지 바삐 움직이니 생각과 다른 몸짓이 나와 풉ㅡ 웃기도 했어요.


자원봉사센터 베테랑 국장님이 '처음 해보는 일이고, 처음 보는 봉사자들끼리 이제 좀 손발이 맞는다 싶으면 끝날 거예요' 하셨는데, 역시나, 이제 연탄이 착착 손에 감기고 덜 허우적 댄다 싶었는데 1,200장 배달이 끝났습니다. (다행히 한 장도 떨어뜨리지 않았어요!)


얼굴이며 옷이 꺼뭇해졌어요. 입안과 목도 까슬해지고요. 그래도 연탄가루로 황칠된 서로의 얼굴에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제 연탄가루 수염은 유달 시리 시커멓게 그려져 주위 분들에게 큰 웃음을 드렸어요. 대충 슥슥ㅡ 닦고 한숨 돌리려니, 어르신 한분께서 아이 같은 표정으로 다가와 물티슈를 통째로 건네주시더군요.


     "아직 많이 남았어요. 닦아요. 허허허허."


연탄 수염 이미지를 생각하다 떠오른 한 장면. 연탄가루로 엉망이 된 제 얼굴 상상하며 웃으셨으면 하고 넣어 본 것입니다. 이미지는 <뮬란>의 중매쟁이.


사실 지난 며칠간 불안을 눈덩이처럼 굴리며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가끔 삶 앞에 겁쟁이가 되어 숨을 동굴을 찾을 때가 있어요)


그러던 중 연탄배달은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샤워를 하며 타일 사이로 씻겨 내려가는 새카만 연탄가루를 보는 기분은 묘하게 상쾌했어요. 내 마음의 검은가루들도 같이 씻겨 내려가는 것처럼요.




오늘은 어제보다 마음의 온도가 1도는 더 올랐을 거예요. 조금은 더 편안하고 좋은 기운도 충전되었고요.


한 동안 글 쓰기, 글 읽기 모두에 집중이 통 안되어 좋아하는 분들 글 읽는 것도 잘 못하고 있었어요. 마음의 검은가루 조금 씻어냈으니, 그동안 다 못 읽은 작가님들 글도 읽고 몸과 마음의 온도를 조금 더 올려보려 합니다.


동굴에 숨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브런치에 계속 맴돌며 숨지 않고 나오게 되었어요. 브런치 문우님들 덕분에 '나도 제법 괜찮은 사람'임을 잊지 않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제법 괜찮은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해 주시는
여러분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혹시 저처럼 동굴에 숨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스스로가 괜찮은 사람임을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잠시 잊으셨을까 봐 말씀드려요.

당신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
좌절의 순간 누군가 곁에서 "아니야,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 네가 있어서 얼마나 내가 힘이 나는데"라는 말을 해준다면,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담백하게 산다는 것>, 양창순 지음

*위 책 저자의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책이 있는데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담백하게 산다는 것>이란 책에서 '넌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는 한 문장이 마음에 닿아 이번 글에 그 문장을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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