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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Nov 20. 2023

사과를 요구하는 친절함

내가 될 만한 너에게

토요일 오전, 아이들이 한글학교에 가있는 틈에 네덜란드어 학원에 간다. 주말에 즐거울 기회를 감수하고 공부하러 오는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나도 열심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고, 안 돼도 말해보고, 옆 사람의 연습을 경청하며 성실과 용기와 인성을 기른다. 인내를 기르기도 한다. 선생님이 작문을 시켰을 때, 남의 차례에도 자기가 주인공인 마냥 대답해 대는 중년남이 꼴 보기 싫지만 어쩌겠나. 과외가 아니니 그러려니 한다.


오늘 배울 문법은 가정법이다. 

내가 너라면 ~ 할 텐데. 

Als ik jou was, zou ik~


다른 사람의 처지에 제대로 놓여보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보통은 해보지도 않는다. 혹은 굉장히 가능한 줄 알아서 문제가 된다. 그나마 쉽게 타인이 되어보기 위해 선생님이 짧은 영상을 보여주었다. 한 남자가 좋은 옷을 입고 여기저기에 돈을 쓴다. 새 TV를 사고, 헬스장에서 개인 강습을 받고, 미인과 근사한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다. 계산을 하려 웨이트리스에게 카드를 건네었는데 안 된다. 다른 카드도 안 된다. 결국 여자가 계산을 한다.


영상이 끝난 후 선생님이 즉석 과제를 주었다. 내가 이 남자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배운 구문으로 옆 사람과 연습해 보고 발표해 봅시다. 짝꿍은 '내가 남자라면 TV를 안 샀을 거야.' 나는 '내가 남자라면 돈을 잘 계산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발표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지목한 브라질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자라면 돈을 잘 아끼는 여자와 결혼할 거야.' 늘 개구진 대답을 하는 남자라 다들 풋 웃었다. 거기에 중년남이 덧붙였다. '돈을 아끼는 경제적인 여자는 몸매가 별로일 텐데.' 양손으로 콜라병 굴곡을 그리며 그런 말을 했다. 말을 이해했는데 설마 저런 말을 할까 싶어 내 이해를 의심했다. 옆의 풍채 좋은 프랑스여자는 눈에 힘이 들어가고 안면이 부르르 떨리며 화가 섞인 한숨을 크게 쉬었다. 


쉬는 시간에 프랑스여자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니 중년남이 한 말의 뜻을 말해주었다. 불투명히 이해했던 그의 말이 불가피하게 선명해졌다. 여자는 견딜 수 없는 언행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다. 항의를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그 사람은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며 자기가 할 수 있는 도리는 자식이라도 제대로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 선생님이 늦는 가운데 중년남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한 농담 말이에요, 경제적인 여자는 몸매가 별로라고 한 거 맞나요?" 그 사람은 자기의 농담이 인정받은 줄 알았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맞다고 했다. 나는 여자의 경제적임과 몸매는 관련이 없다고 했다. 교실에 있던 네 명의 모든 여자가 나를 보고 끄덕였다. 반응을 안 했다 뿐이지 전부 불쾌했던 것이다.


그는 농담이라고 했다. 그게 농담이라니. 정말이지 가정법은 불가한가 보다. 전혀 재미가 없다고 했다. 당신의 농담은 여자에 대한 당신의 판단기준을 드러내고 그래서 불쾌하다고 말했다. 그의 옆에 앉은 인도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여기는 남자 넷 여자 다섯이니 여자가 다수라고도 했다. 다수일 때만 우세가 될 수 있는 건 논리에 맞지 않지만 인간은 그리들 생각하므로 분위기가 내 쪽으로 기울었다. 중년남은 미안하다고 했다. 프랑스 여자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항의이니 만큼 강하고 분명하게 말하고 싶지만 내 목소리는 얼마간 떨린다. 불쾌감을 표현하는 일은 늘 껄끄럽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부담이 있으니까. 나는 아무 남에게나 일정 부분 나를 투영한다. 오지랖인지 잔정 때문인지 참 피곤하게 그렇게 되어버린다. 약간은 나인 남이 나를 저버릴까 무섭다. 약간은 나이기 때문에 맘대로 화를 내지도 못하고 친절하려 한다.


그래서 확인해봐야 한다. 약간이라도 나일만한 사람인지 티끌만큼도 나여서는 안 되는 사람인지. 전자라면 감정이 해소된다. 후자라면 머저리임을 확인했으므로 나의 무의식이 상대와 완전한 선을 긋는다. 그 후엔 상대가 뭐라 떠들어도 내 평화에 침투하지 못한다. 아, 또 머저리가 떠드는구나.


예전엔 남을 무시하지 못하는 나, 혹은 남에게 쉽게 동요하는 나를 탓했다. 문제가 되는 그 순간을 놓쳐서 내가 묻은 남을 혼자 열렬히 미워하고 소진되곤 했다. 이젠 내 성정이 어쩔 수 없음을 안다. 그러므로 반드시 확인하기. 내가 묻을 만한 사람이면 나를 제대로 묻혀 사과를 받아낸다. 내가 묻을 만한 사람이 아니면 머저리 취급이 된다. 그토록 바라던 무시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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