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발도르프 2
9월부터 초등학생이 된 아이. 매일 숫자와 알파벳을 어떻게 배웠는지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숫자는 수에 담긴 의미를 함께 배운다.
1은 하나 된 지구,
2는 두 눈과 두 귀,
3은 세 명의 동방박사,
4는 네 계절,
5는 다섯 손가락,
6은 육각형 모양의 벌집,
7은 일곱 가지 무지개색,
8은 여덟 개의 거미 다리,
9는 아홉 개월의 임신 기간,
10은 열 손가락.
알파벳을 배울 땐 선 그리기부터 연습했다.
직선과 곡선으로 모든 알파벳을 쓸 수 있다.
알파벳은 a부터 배우지 않고 많이 쓰이는 것부터 배운다.
소문자부터 배운다. 글자는 위에서 아래로 쓴다.
네덜란드어로 '나'를 뜻하는 ik의 두 글자부터 배웠다. 한 글자를 이틀, 사흘동안 배운다.
i와 k를 배우곤 바로 ik(나)를 써본다. 그리고 밀납으로 조물조물 ik를 만들어 종이에 붙여왔다.
m을 배울 땐 m모양에 마카로니를 붙여왔다. (마카로니는 Macaroni, M으로 시작)
r을 배울 땐 r모양에 무지개 색으로 종이 붙이기를 한다. (무지개는 Regenboog, R로 시작한다)
알파벳을 배울 때에는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도 함께 배운다. 덕분에 네이티브가 아닌 아이의 발음이 교정되고 있다.
부모로서 좋은 건 내가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다.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처음 배운다. 먼저 배운 아이가 지루해하거나, 안 배우고 간 아이가 뒤쳐질 일이 없다. 아무것도 안 할 합의. 아니, 합의의 불필요. 배움의 기쁨을 동시에 다 같이 느낀다.
아이가 배운 걸 듣고, 만들어 온 것들로 어떻게 배웠는지 짐작하고, 아이가 새 단어를 읽는 현장을 목격한 후 놀라움을 표현하는 나날이다. 학교라는 배움의 현장 밖에서, 아이와 선생님을 지지하기만 하는 보호자 역할은 더없이 간단하고 흐뭇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