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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Jan 04. 2024

갑을이 아닌 파트너

네덜란드 회사생활

외주 업체의 Lead engineer(이하 LE)가 우리 프로젝트를 떠난다. 사수에게 물으니 외주 업체에서 교체하기로 결정했단다. 다른 엔지니어도 곧 다른 프로젝트로 옮긴다던데.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 좀 언짢다. 사람이 바뀌면 따라잡느라 시간이 드는데. 외주업체면 인사관리도 우리와 협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편에게 물었더니 아니란다. 


한국에서 일할 때, 남편은 반도체 공장의 장비회사 소속이었다. 즉, 공장은 원청, 남편네는 하청. 하청에서 원청 공장에 들어가 작업을 한다. 공장은 출입할 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규모가 워낙 커서 이동하는데 한 세월. 보안이 엄격해서 출입자격이 있는지, 반입반출 불가 물품은 없는지 줄 서고 확인받느라 또 한 세월. 마침내 클린룸으로 들어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장비까지 걸어가는 데 마지막 한 세월이다. 


원청의 두 직원은 하청이 점심을 못 먹게 했다. 점심먹으러 나갔다 들어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이유였다. 하청이라고 자기 종처럼 부렸다.


수개월이 지나고, 하청의 매니저는 원청의 매니저에게 통보한다. 점심 못 먹게 하는 당신네 직원과 일 안 합니다. 


그리고 그 둘은 짤렸다.


사실 몇 달 전엔 사수가 업체 직원 모두와 개별 회의를 잡고 직접 지시를 내렸다. 업체 측에서 제안했다. 업체의 LE에게 지시를 내리면, 그가 자체적으로 업무분담을 내리겠다고. 사수는 수락했다.


남편은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했다. 외주업체는 우리를 돕지만 독자적인 조직이므로 운영에 관여할 순 없다. 회사와 외주는 갑을이 아닌 파트너라고. 직원의 잦은 교체가 불만이면 손실을 계산해 회사 대 회사로 청구하는 게 맞단다.


외주는 내 밑이 아니다. 내 옆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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