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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푸른 Jan 03. 2024

한 해 피드백과 계획

네덜란드 회사생활

새해 첫 출근날이다. 사수가 저번 주에 1년 간 자신에 대한 피드백과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알려달라고 했다. 오늘은 그걸 이야기할 예정이다.



<피드백>

늘 친절해주셔서 감사해요. 당신에게는 어떤 고민과 걱정, 무지까지도 드러낼 수 있어요.

회의 중에 날카로운 질문을 하시는 게 도움이 되어요. 회의의 맥을 잘 짚어주시는 것 같아요. 태도도 배우고 싶어요.

유익한 교육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해요.

잦은 회의로 바쁘셔서 제가 질문드리는 게 방해가 될 것 같을 때가 있어요. 주저 말고 메신저로라도 남겨둘게요.


피드백을 가장한 칭찬 폭격이다. 아부인가?


<원하는 것>

설계에서 3D 디자인보다 부품의 기능에 집중하고 싶어요. 부품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설비의 요구조건에 맞는 사양을 정하는 것이 흥미로워요.

제 모델링 스킬이 부족해요. 지금 3D 디자인을 외주 주고 있는데, 이게 회사의 정책인가요? 제가 얼마큼 모델링 스킬을 연마해야 할까요?

내년에 공차, 볼트 연결, 유체 관련 교육을 듣고 싶습니다.


모델링하기 싫어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물어봤다. 하지 말라고 하면 완전 좋고 하라고 하면 그것대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제안사항>

Designer's meeting 진행 방식을 바꾸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엔지니어에게 발언기회를 주고 싶으신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너무 세부사항이라 다른 사람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요. 시간도 1시간을 훌쩍 넘고요.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항과 스케줄 정도 알리고 세부사항은 개별 미팅에서 처리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궁금한 점>

외주업체와 일할 때 제 위치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궁금해요. B와 일하는데 사실 그분이 저보다 경력이 많거든요. 제가 일을 시켜야 할 것 같은데 시킬만한 내공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B가 저에게 잡무를 주는데 제가 하는 게 맞나요?


사수는 내 피드백에 고맙다고 해주었다. 원하는 것도 알아두겠단다. 모델링은 Designer에게 어느 정도 꼭 필요하다고. 온라인 강의를 들으라고 했다. 업무시간에 온라인 강의 듣기 뭣하다고 하니 스킬을 늘리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일정 일부를 온라인 강의로 할당하라고 했다. 와, 알겠습니다!


Designer's meeting은 자기도 고민중이라고.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아는 건 중요한데 어떻게 진행할지는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외주 업체와의 관계는 이렇게 정리해 주었다. B는 중급이고 나는 중급에 가까운 초급으로 본다. 내가 B에게 지시를 내리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런데 B가 나에게 잡일을 주는 것도 아니다. 외주업체는 우리를 도와주는 입장이니까. B가 주는 일을 해야 하나 의아할 때 문의하라. B와 나는 함께 일하는 것이다. 


와, 아주 속이 다 시원했다. 나를 정확하게 보아서 기대가 적다는 것, 능력밖인 리더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쾌재를 불렀다. B와 나는 동등하다는 것도 일을 하는데 가이드라인이 될 것이다.


우리 사수는 젠틀한 사람이고 늘 좋은 얘기만 해준다. 혹시 내 감정을 배려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못하진 않을지. 스스로 부족하다 느낄 때가 많아 그런 의심을 한다. 그럼 일도 못하면서 말을 삼키는 스트레스까지 주는 건가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꼭 달라고 얘기했다.


사수는 한 엑셀파일을 켜더니 이건 못 보여준다고 했다. 몸의 각도를 노트북과 등지게 틀었다. 그는 내가 사교적인 사람이라 좋다고, 회사를 home처럼 따뜻한 기분을 들게 한다고 했다. 작년도 일에 진전이 있었다. 다만, 구매팀 요구를 다 들어줄 필요는 없다. 견적서를 달라고 하지만 실제 구매 시점에 값은 변한다. 견적서 수합은 그들의 일이기도 하다. 


솔직함을 주저했던 날들에서 솔직해서 속 시원한 날들로 옮겨오고 있다. 선의를 갖고 귀를 활짝 열어둔 사람 앞에서 나는 그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어려운 얘기를 풀어간다. 잘하고 싶다. 잘해서 사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해의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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