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 없이 술먹기

도전 : 군것질 안하기 7일차

by 전푸른

생일 전 날이라 사려고 벼르던 구두를 사러 시내에 나갔다. 거의 10년 간 정장이 필요한 자리에서도 얌전한 운동화로 버틴 듯. 이젠 좀 사도 된다. 쇼핑하는 동안 배가 고프면 과소비를 하기 쉬우니까 아침을 먹었다. 남편이 애들 도시락으로 만든 주먹밥 몇 알과 빵 두 조각.


원피스에 어울리는 로퍼나 부츠를 원한지 몇 년이다. 가성비 좋은 브랜드를 탐색할 시간이 부족해 널리 알려진 닥터마틴 부츠을 살까 했는데 노란 스티치가 거슬리고 200유로라는 가격은 정말 너무하다. 그래서 표면적이 적어 가격도 낮은 로퍼를 사기로 했다. 요새 네덜란드 날씨는 최고 영상 10도 정도다. 밖에서도 반팔, 혹은 반바지를 입는 바이킹족을 볼 때가 가끔 있다. 즉, 방한을 쇼핑에 굳이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로퍼 하나 사서 청바지, 원피스에 두루두루 신고 싶다.


H&M을 둘러봤는데 싼 티가 나고 내 생각보다 너무 싸다. 사더라도 가격에 타협했다는 미운 티가 박힐 것 같다. 닥터마틴을 들러 예산의 최고수준을 정하고 steve madden에서 마음에 드는 것 가격 본 후, 고가형 신발 집합 브랜드에 가서 더 나은게 있나 확인한 다음에 steve madden에서 구매 확정을 했다. 그 곳에서 산 이유는 물건이 편하고 고급스러웠고, 점원이 나에게 좋은 것을 권유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원래 39 size를 신는데 이 점원은 37을 신으라고 권했다. 38사이즈 신발 뒤꿈치가 헐떡이는 걸 보고 37을 신기더니, 발 끝이 조금 남는데가다 조금 끼는 것 같은 발 너비는 신으며 늘어날 거라고. 경험으로 손님에게 좋을 것을 추천하는 점원에게 신뢰가 갔다. 큰 돈을 썼지만 나의 한 세월을 함께 할 좋은 신발이 될 거란 기대가 있다.


돌아와 점심을 먹고 저녁에 올 가족 손님을 위해 나름 열심히 저녁상을 차렸다. 잘 차리고 잘 먹고 손님이 가져온 달달한 포르투갈 와인을 마셨다. 군것질은 전혀 안 했다. 참 신기하다. 저녁에 스스로의 하루를 보고할 약속을 했다는 이유로 지난 세월 스스로와 타협해오던 습관을 뿌리칠 수 있다니. 군것질을 안하는 대신에 남은 계란 후라이와 고등어 구이를 먹긴 했지만 군것질은 단연코 안했다. 군것질 안해도 남들은 신경도 안 쓴 다는 것도 새로 알게되었다. 내가 무슨 고군분투를 하는 지 여부와, 오버하는 것 같아 보일 까 걱정하는 나의 소심함도 남들에겐 다 부질없는 것이다.


다음 백일 챌린지에서 술과 야식과 과식은 알아서 할 문제고 오늘 나는 안주로 나온 과자 따윈 손길도 안 줬단 이 말이다. 알딸딸한 기분이라 그런지 스스로 더 대견하다. 거봐, 네 생각보다 넌 엄청 대단하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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