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시빵 맛보기 - '동네 자랑'
- 그림 김은오
고층아파트 주민으로만 살다
얼마 전, 낡고 오래된 다가구 집들 동네로 삶터를 바꿨다.
여러 식구가 드나드는, 언제나 활짝 열린 대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는, 주차 다툼으로 늘 시끄러운 골목.
담벼락에 붙다시피 선 전봇대들과 낮고 어지럽게 깔린 전선들...
과거로 오는 시간여행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었다.
이사 다음 날, 골목에서 다짜고짜 소리치는 낯선 할머니와 마주쳤다.
새로 이사를 왔으면 떡을 해 돌려야지!
봉지커피를 들고 불쑥 올라왔던 아래층 할머니는
냉장고를 여기다 놨네, 자리가 원래 저긴데?
계단에서 재활용품 분리할 때는 뒷집 아주머니 목소리도 날아왔다.
다 따로따로 묶어 큰길에 갖다 놔요! 안 그러면 벌금 물어!
마치 개인의 고립된 행성에서 참견과 간섭이 있는 우주공간으로
끌려나가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문만 열면 바깥공기와 만나고, 땅 가깝고 이웃의 관심도 가까운
이 동네가 앞으로 무슨 말을 또 걸어올지,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동네 일지
겁도 나고
한편 궁금도 하다.
이웃 간 느슨한 경계가 소통과 만남으로 흐르는 곳일지.
이제 바람 따스해지면 우리 동네에도
꽃씨가, 비가 오면 부침개가 날아다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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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풀 : 동화와 청소년소설을 쓰고 있어요. 신화, 역사, 판타지, SF에 두루 관심이 많고요, 요즘엔 동시의 매력에 빠져 있어요. 지은 책으로 <늑대왕 핫산> <루케미아, 루미> <어느 날, 신이 내게 왔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