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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와밥풀 Mar 05. 2018

동시빵가게

32. 동시빵 맛보기 - '풀'

더운 여름을 나기도 힘들지만, 추운 겨울을 나기도 만만치 않다. 한파가 왔을 때 물을 안 틀어 놓고 나갔더니 낮 동안 온수 배관이 얼어 버렸다. 보일러에서 실내로 연결된 온수관을 드라이기로 한참을 녹였다. 한두 시간 싸움 끝에 수도꼭지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는 물을 보고 와 하고 감탄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겨울은 몸을 움츠리게 한다. 내면으로 응축하게 만든다. 밖으로만 나가던 삶의 에너지가 안으로 스며들어 내면을 직시하게 만드는 장점도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다가 그만 얼어 버리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잃어버리고 만다. 낮 동안 얼어버린 수도관의 물처럼. 이래서 겨울도 한 시절을 차지했다면, 존재의 순환을 위해서라도 따뜻한 봄이 와 줘야 한다. 


봄을 노래한 시들은 많다. 봄은 풀을 상징의 대상으로 삼아 많이들 노래한다. 김금래 시인이 노래한 <풀>도 무언가 가슴을 울린다. 나무가 봄을 데려오는 것도 아니요, 꽃이 봄을 데려오는 것도 아니란다. 가장 낮은 곳에 사는 풀들이 봄을 데려온단다. 바닥부터 파랗게 살아서 나무와 꽃 사이로 번지는 저 풀의 생명력, 풀의 색감, 풀의 피어오르는 에너지가, 겨울 한파에 얼었던 수도꼭지에서 쏴하고 터져 나오던 물줄기만큼이나 강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풀이 담고 있는 연약한 이미지 속에 숨어 있는 강하게 뻗어 나오는 생명의 힘을 이 시는 은근히 노래하고 있다. 거친 목소리가 아닌 따뜻한 톤으로. 봄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https://dongsippanggage.modoo.at/

이재복 : 동시 읽는 걸 좋아하는 동시빵가게 바지사장입니다. 시인들과 어린이 독자와 동시빵가게 만들면서 같이 재미있게 놀고 싶습니다.   iyagibob@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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