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시빵 맛보기 - '삼촌의 복권'
어린이 교육 출판사에 다니는 난 토요일마다 고속도로를 타고 전국으로 출장 간다. 뿌연 먼지의 회색 스타렉스 차엔 나를 포함한 연구원이 셋, 영업 팀장님은 운전대 키를 쥐고 있다.
쌩쌩 바퀴가 잘 굴러가다가 승용차, 관광차, 캠핑카 뒤로 줄을 서기 시작하면 키를 쥐고 있는 팀장님이 말한다.
"오늘 로또 사는 날이네!"
피곤한 얼굴로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
이 소리만큼은 희망차다.
꾸벅꾸벅 나른한 공기가 살아난다.
나는 생각한다. 지난해 회사를 퇴사하던 p대리의 말을.
"로또 사야 하는데."
"로또에 당첨되면 뭐 할 거예요?"
"떠나야지!"
P대리의 한 옥타브 높은 말소리.
내가 로또를 사는 날은 좋은 꿈을 꿨을 때뿐이다. 로또를 살 때면 기분이 이상해서 잘 사지 않는다.
부끄러운 감정. 수치감. 아는 사람이 날 볼 것만 같고. 두리번두리번 망설인다.
이런 나도 좋은 꿈을 빌어 로또를 샀던 날
꼬깃꼬깃 흰 종이를 접어 지갑에 넣으면 1주일을 기대와 설렘, 희망으로 동동거린다.
유효기간은 딱 1주일. 그 시간엔 마치 로또의 위너가 된 것처럼. 내 마음은 산호섬에 가 있다. 나도 멀리멀리 떠난다. 자유롭게.
1주일의 위너는 꿈과 자유가 고프다.
로또를 사는 삼촌은 청년 백수일 수도 아니면 회사원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 조카에게 100만 원을 웃도는 스마트폰을 척척 사 줄 형편이 못된다.
토요일 해질녘, 많은 이들이 1주일 동안 지갑에 꼬깃꼬깃 품고 있던 놓친 꿈을 쓰레기통에 버릴 것이다. 이렇게 팍팍한 현실을 잠시 잊어보는 것도 좋긴 하지만… 놓친 희망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꼬깃한 꿈을 다시 주워 와서 손에 꼬옥 쥐어 보자.
꿈은 사는 게 아니니까.
로또가 안 돼도 괜찮다.
https://dongsippanggage.modoo.at/
서희경: 동시를 쓰고 아동문학을 연구하며 그림책을 빚는다. 공저 <신성한 동화를 들려주시오>, 옮긴 그림책 <탐정 해럴드>, <너에게 쪽지를 썼어!>, <별똥별처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