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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r 20. 2024

플랜75

너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난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라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의자에 앉혀졌다 침대에 눕혀졌다 하다가 틀어주는 텔레비전을 멍하니 보고 밥때가 되면 남이 쥐여준 숟가락으로 밥을 먹고 누가 다정하게 대해주면 기뻐하고 어제와 다르게 친절하지 않다고 느끼면 나한테 왜 그러냐는 말도 못 하고 눈치만 보며 시무룩해지는 상상.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점점 단순화되고 줄어들며 지난 세월 느끼고 겪은 것들은 점점 희미해지는 것이다. 그때쯤이면 나를 바라보는 누구라도 점점 때가 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거고 누구보다 내가 자각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 가까워지는구나.

가장 두려운 건 내가 누군지 잃어버리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뭘 해야 할지 단번에 떠오르지 않고 예전에 쓴 글을 발견하면 그건 왜 썼는지,  내가 끄적인 인스타 피드의 글과 블로그 속 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몰라서 망연자실하게 될까 봐. 신체 기능을 하나씩 상실하게 되면 어쩌지…특히나 무슨 장난처럼 했던 말, 진짜로 벽에 똥칠을 하면 어쩌지… 그 지옥 속에 내 자식을 가두게 되면 어쩌지…

오직 육체적 기능을 조금씩 연장하기 위해 삶의 의미를 아래로 아래로 수정해 나가는 게 맞을까. 떨어지고 떨어지는 명료한 의식과 곤두박질치는 삶의 격을 받아들이는 게 맞을까. 언젠가는 더 이상 내려가려야 내려갈 곳도 없는 낭떠러지에 내몰리게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정말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물론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없어진다고 존엄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나이가 들면 옛날 같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고 삼라만상이 언젠가는 스러지기 마련이니까. 역설적으로 얘기하면 똑똑하다고 잘난척하던 그때보다 조금은 멍청한 듯 느슨해진 사람이 더 인간적일 수 있다. 백발의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고 깨끗한 옷을 입고 소파에 앉아있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존엄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그 단정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게 골치가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부담을 주는 나를 인정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고 아침에 눈 떠 하루가 시작된 것을 알면 그걸 감사해하면서 봄의 꽃과 여름의 태양과 가을의 낙엽 밟는 소리 겨울의 쌓인 눈을 바라보며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잃어버린다고 해도 여전히 남아있고 싶다는 거지.

두 가지 생각의 흐름이 끝없이 교차한다. 마지막까지 삶의 주도권을 쥐고 있으려는 나와 소멸에 운명을 걸려는 나. 삶의 격과 죽음의 격에 수많은 물음표가 생긴다. 만약 영화에서처럼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는 무엇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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