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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r 26. 2020

세계폭주

마루야마 겐지








책을 읽다 보면 여러 명의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무료한 시간에는 베스트 3에 누구를 넣을지 혼자 생각해보기도 한다. 작가가 들으면 당신 같은 사람에게 베스트 3라니, 내 쪽에서 거절합니다.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자신의 글을 좋아하는 독자를 밀어내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내가 꼽는 베스트 3 작가는 매년 한 두 명 정도는 변했지만 언제나 확고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그는 매년 방송 3사와 수많은 종편에서 활약하고는 연말이면 시상식의 제일 높은 자리를 꼭 하나는 차지하는 유재석 같은 인물이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는 그 정도로 확실히 자리매김 한 부동의 1 위라는 이야기다.

뭔가를 좋아할 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왜 이 작가가 좋은 거냐고 묻는다면 퉁명스러워서 좋다고 대답할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독자들에게 불친절할 뿐 아니라 꼭 뭔가에 화가 난 할아버지 같다. 꼰대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나이지만 그가 하는 말은 꼰대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내가 하는 말이 무조건 다 맞으니까 내 말 들으면 손해는 안 날 거야.』 하는 식이 아니다.『내가 너보다 오래 살았고 인생 경험도 많고 배운 것도 많고 따라서 아는 것도 많다는 사실을 전제로 오래 살아보니 이렇더라. 』 하는 은근한 가르침은 절대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난 이렇게 생각하는데 넌 다르게 생각하는구나.』 『그럼 그렇게 살다가 죽던가.』『 나는 어차피 당신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 법이고 그걸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살다가 죽는 건 당신이 못나서일 뿐이다.』니체의 사상과 어딘가 닮은 듯도 하다. 니체도 잘난 척 대마왕이지만 마루야마 겐지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잘난 척하는 게 꼴 보기 싫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아부하기 좋아하는 일본의 문단에서 반항아 취급을 받고 그의 글을 평가절하한다고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독자들에게도 자신에게도 뼈아픈 말을 잘한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일본인에 대한 편견을 깨준 사람이다. 돌려서 말하는 법이 없고 자신보다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비굴하지도 않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섣부른 가르침은 하지 않는다. 그냥 자신이 정한 길로만 가는 사람이다

그 점이 바로 내가 전지를 눈여겨보게 된 점이다. 쓸데없이 주변을 둘러보거나 자신의 나이를 의식해서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니까 글도 제멋대로 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쓴다. 마루야마 겐지도 자신의 글을 자체 검열하겠지만 검열한 게 그 정도라면 그는 역시나 대단한 작가다.










세계폭주라는 책에서도 마루야마 겐지가 평소에 갖고 있는 생각을 찾아내는 일이 너무나 흥미로워서 책 읽기가 아주 신바람 났다.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일주일도 넘게 최대한 천천히 좋아하는 문장을 찾아내고 오래오래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가장 아끼는 볼펜으로 필사를 했다. 마루야마 겐지 필사 노트가 따로 있을 정도니까 얼마나 이 아저씨가 좋은지 모두 짐작할 것이다.








사람들은 충분히 쉰다. 온갖 불리한 조건을 껴안고 있음에도 심각하게 생각하면 절망에 가까운 미소를 띠고 이 세상과 자신의 처지를 긍정한다. 그리고 그 증거로 자식을 낳아 키운다. 자식이 자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아도 상관없다는 뜻인가. 대단한 배짱이다.


이 문장은 짜릿했다. 독자가 작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작가가 대신해 줄 때 느끼는 대리만족 때문이라면 엄청난 공감과 대리만족이었다. 나는 대책 없이 긍정적이고 마구잡이로 결혼을 하고는 긍정적인 사람이 대체로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먹을 건 자신이 타고나는 법이라는 말로 위안을 하면서 몇 명의 자식을 낳아 힘들게 기르는 사람에게 마루야마 겐지의 말을 읽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런 부류들은 어차피 무슨 말인지 모를 확률이 많거나 오히려 나 같은 사람을 실패한 인생으로 치부하겠지만.









인간은 참 묘한 동물이다. 물욕을 채우기 위해서는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에서도 산다. 힘없는 인간이 여기까지 운명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머리뿐 아니라 끝없는 욕망 때문이기도 하다. 이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자들이 유독 욕망이 강한 건 사실이다. 사랑과 친절함에 매달려 살려는 자는 가장 비참한 희생물이 되곤 한다.



물욕이 강한 사람은 무섭다. 머리가 좋은 사람도 무섭다. 물욕도 많으며 머리까지 좋은 사람은 나를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물욕이 많은 자들이 보기엔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랑과 친절함에 매달려 사는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것이 인간사. 몇천 년 변함없이 돌아가는 인간의 역사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마루야마 겐지는 언제나 이 물음 앞에 서게 만든다.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하는 하는 사람도 없고  밑에 이래라저래라 잔소리해야 하는 사람도 없는  위치. 하루 스물네 시간 1 내내 하고 싶은 대로   있다. 나는 최대한 집단이나 조직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규칙은  하나로 족하다. 국민의  사람, 시민의  사람이 아니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아. 이 독립적인 남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조직에 가담하지 않고 독야청청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건 웬만한 용기가 아니면 못하는 일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떠밀려 나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세상이다. 조직에서 떨어져 나가는 건 곧 무능력으로 치부하기 때문에 불안에 떠는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그건 틀린 말이다. 조직에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자다. 물론 홀로서기가 가능해야만 성립되는 이야기지만 홀로서기가 당장 불가능하더라도 일단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믿을만하다. 자신은 세계를 폭주할 만한 남자라고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고 있다. 그가 좋아한다는 오토바이 뒤꽁무니에 앉아 오빠. 달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무라이 같은 글을 쓰지만 정말 못 말리게 뜨거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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