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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r 20. 2020

고독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나는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정말 약해서 드는 생각인지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드는 생각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얼마 전까지 친구와 갈등을 겪었다. 물론 갈등이 한창 진행 중일 때는 갈등의 상대였던 친구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 혼자만의 난리 부르스였다.

그 사람이 싫은 건지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싫은 건지 역시나 잘 모르겠다. 짐작에는 그 사람이 평소에 하는 말이 싫어서 그 사람까지 싫어진 게 아닐까 싶다.

저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 나에게는 왜 이토록 어려운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해지는 일이 되는 걸까.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저 사람은 왜 매번 신의 보호를 받는지.

나에게는 아뿔싸 내가 그럴 줄 알았다 하는 일이 저 사람에게는 늘 천만다행한 일로 결론이 나는지.언제나 의문스러웠다. 

내가 상처를 입은 이유는 다름 아닌 비교 때문이다. 이 자기 파괴적이고 찌질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은 30년 지기 친구다.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꽃잎보다 더 가볍다는 사람의 마음을 믿고 정을 나눈 세월을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다는 일본의 수필가 요시다 겐코의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속속들이 잘 아는 사이는 무섭다.

귀밑 3센티 단발머리가 나에게 얼마나 안 어울리고 촌스러운 모습이었는지를 직접 본 사람. 내 첫사랑의 상대가 이제 막 코 찔찔이 티를 벗은 까까머리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제일 위협적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한다. 무슨 말을 해도 척척 알아들을 사람이자. 내 마음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마음을 알아주는 존재라고도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잘못하면 상대에 대한 편안함이 상대에 대한 무시로 변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를 쉽게 생략하면서 가장 가깝지만 가장 상처 주기 쉬운 사람으로 변질된다. 오래 알았고 그만큼 믿었던 사람이기에 상처의 깊이는 당연히 깊다. 








넌 참 운도 없다.

넌 참 팔자도 세다.

안 그래도 힘든데 애까지 우울증이래?

애가 그렇게 될 때까지 몰랐어?

어떡하니 그거 고질병인데.





친구는 언제나 준비가 없는 나에게 쨉을 날린다. 연타를 맞고 정신을 못 차리다가 문득 생각했다. 

맞설 것인가. 고독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여기에서 뒤를 보이면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니까 끝까지 맞서 싸우는 용감한 파이터가 되어야 한다고 지금부터라도 복수의 칼을 갈며 싸움의 기술을 연마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당장 직면한 문제는 싸움의 기슬을 연마할 때까지 계속 쨉을 맞을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는 사실이다.과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까지 친구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자신의 안위를 확인하는 존재다. 나에게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어딘가에서라도 찾아내고는 안심한다.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불행이 오히려 비껴간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싸우지 않고 고독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렇다고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은 괴짜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할 만한 사람도 아니다. 단지 고독을 새로운 친구로 삼았을 뿐이다. 막상 혼자가 되어보니 혼자라도 충분히 즐겁고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할 시간이 확보되었다. 타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을 접어버리고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하게 됐다. 나는 너무나 소중하다.













만약 새벽이나 한밤중에 그리고 기쁠 때나 슬플 때 읽을 만한 좌우명 같을 것을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 집 벽에 햇빛 아래서는 금빛으로 빛나고 달빛 아래서는 은빛으로 빛나는 글자로 다음과 같이 써두면 좋으리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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