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고 길에 글을 썼습니다_김중혁
『영화 보고 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라는 책은 작가가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머릿속이 복잡할 때, 뭔가 말하고 싶은데 정리가 안 되는 그 기분. 김중혁은 바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 지금 이 느낌을 글로 남겨야겠다! 고 결심하고 메모하고 살을 붙여 묶어낸 보물 같은 책이다.
더 늦기 전에, 창작자들에게 이 책을 소개해 주는 것이 글 쓰는 사람으로서 도리인 것 같아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이 책을 77편의 영화 리뷰를 담은 단순한 영화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게도 창작자를 위한 실전 글쓰기 교본이었고 영화관에서 나오는 순간이 창작의 골든타임이라는 걸 깨닫게 한 책이었다.
실제로 나는 초보자를 위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할 때 영화(책)→메모→글 완성의 3단계 창작법을 알려준다. 책이나 영화를 본다-메모를 한다-살을 붙인다-글이 완성된다. 이 단순한 순서가 백지 공포증을 극복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이 방법을 똑같이 하는 작가를 만나다니.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짐작 건데 많은 작가들이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글을 쓰거나 창작을 할 거라고 본다.
책을 읽는 동안 글쓰기에 관한 수많은 영감이 떠올라 그야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알다시피 영감이라는 건 떠오르는 순간 잡아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메모를 할 상황이나 여건이 안 될 때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대놓고 글쓰기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책을 수없이 읽었지만 그때도 이렇게 머리가 복잡 현란하지는 않았다. 김중혁은 단순히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창작자의 눈으로 해부를 했다. 영화에서 추출한 창작 지혜는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웹툰 작가, 브랜드 스토리텔러 모든 창작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될 거라고 단언한다.
글쓰기 소재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77편의 영화로 영감을 충전을 한 것만 읽어도 저절로 영감이라는 것이 자동 충전되는 기분을 느낀다. 대리 만족 효과다. 영화 속 인물 분석으로 입체적 캐릭터를 만드는 것 역시 대리만족이 가능하다. 그뿐 아니다. 김중혁의 섬세한 감정 표현법을 벤치마킹하고 일상을 이야기로 바꾸는 작가만의 시선도 배울 수 있다. 물론 배운다고 다 김중혁처럼 쓴다는 보장은 없지만 방법이라도 알아두는 건 좋은 거니까.
520페이지의 압도적 분량도 꽤나 흡족했다.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 읽어버리면 서운해서 어쩌지 싶었고 이 무한한 레퍼런스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현상계와 상상계의 유쾌한 조화를 보여주는 김중혁의 독특한 문체와 영화 리뷰를 넘어선 인생 성찰과 창작 철학 또한 신의 경지에 도달한 듯 보였다. 평범한 이야기를 평범하게 쓰는 것도 어렵지만 평범한 이야기를 특별해 보이게 쓰는 것 또한 어렵다. 그 두 가지를 다 해내는 사람이 김중혁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글쓰기가 무겁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한다. 김중혁처럼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자유롭게 써도 된다는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