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이 미워질까

두고 온 여름_성해나

by 김설



여러분! 오늘은 정말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소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존대냐면요. 개표 방송을 하는 지금 갑자기 제 기분이 좀 그래요. 두려움인지 답답함인지 모를 감정이 엄습해 와 안절부절 하다가 다른 데 집중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글을 쓰고 있어요. 가상의 누군가에게라도 말을 걸지 않고서는 이 캄캄한 시간을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라서요. 그래서 갑자기 친한 척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튼!

며칠 전 반나절 만에 읽은 성해나 작가의 소설 [두고 온 여름]을 소개할까 합니다. 성해나 작가의 소설은 이번에 세 번 째인데요, 이 작가는 대체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감정과 관계의 미묘함을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특별한 사건보다는 평범한 순간에 숨어 있는 감정의 결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소설 역시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되더군요. 이 내용으로 주말 가족 드라마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읽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두 줄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부모님의 재혼으로 인해 혈연 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가족이 되었다가 해체되는 이야기입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동생이 생기는 기하는 사진관 집 외아들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한 인물입니다. 자기 인생에 갑자기 나타난 재하와 그의 어머니 때문에 자신만의 안전한 성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끼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황을 맞으면서 생긴 울퉁불퉁한 감정을 감추고 덮어가며 살아가는 존재예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재하에게 기하는 적대감을 느끼는데 그건 단순한 질투를 넘어서는 감정인 듯 보입니다.



뒤늦게 형이 생긴 재하라고 맘이 편한 상황은 아니지요. 무척이나 안쓰러운 인물입니다. 상처받은 마음으로도 사랑을 배우는 아이라고 할까요? 재하가 스스로 고백하는 말이 있어요. "비정에는 금세 익숙해졌지만, 다정에는 좀체 그럴 수 없었습니다"라고요. 이 한 문장에 재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폭력적인 아버지와 결별하고, 새로운 가족 품에 안겼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형에게 다가가는 재하의 모습이 애틋해요. 특히 기하에게 느끼는 일방적인 애정과, 항상 존댓말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애잔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님의 재혼으로 뭉쳐진 가족의 이야기는 복잡하고 미묘한 갈등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책을 덮으니 비슷한 환경에 처했던 친구의 말이 기억나더군요. (더듬어 보니 그때가 15살 때였던 것 같아요.) 자기는 태어나 보니 낳아 준 엄마가 아버지의 둘째 부인이었다. 엄마는 배다른 형제들에게 생모의 자리를 뺏은 여자였고 그런 엄마의 자식으로 사는 건 죄책감과 고통을 떠안는 일이었다. 나이 차이가 많은 형제들의 눈치를 보며 밥 한 숟갈도 편히 먹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마음껏 받지 못하는 운명은 자기가 원하는 삶이 절대 아니었다. 어릴 때는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도무지 와닿지 않았고 친구가 토로한 아픔이 너무나 먼 일이라서 눈만 끔벅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기하와 재하가 다소 황당한 사건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세월이 가면서 기하에게는 수면으로 떠오르는 감정이 있습니다. 지금은 화해나 이해가 불가능한 관계가 되었을 만큼 시간이 지났지만 오히려 또렷해지는 감정이라 당혹스럽습니다. 이 감정이 소설 속에서는 "부채감"과 "미안함"으로 표현됩니다.
작가는 "완성하지 못한 인간관계"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경험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나 봅니다.

"더 다가갔다면", "더 용기 냈다면"과 같은 후회를 거듭하는 대신, "어떤 이해는 불가하고 어떤 오해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성숙함을 보여준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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