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입고]
[초록을 입고]는 장르를 넘나든다. 시, 에세이, 일기, 담소가 결합된 책이다. 5월 31일이라는 시간 안에서 매일 하나씩의 글을 배치한 구조가 일상과 성찰을 동시에 보여준다. 시인은 하루에 한 번 시를 생각한다. 일상적인 언어에서 시적 가능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평범한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꾼다. '오발단(오늘 발견한 단어)'을 통해 말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과정에서는 언어 자체가 책의 주인공이 된다. '봄물', '울음기', '간곳없다', '건밤', '책치레' 같은 단어들은 단순한 어휘를 넘어 시적 상상력을 일으킨다.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기획은 시간과 계절을 문학과 연결시켜 신선하다. 그래서 책이 나오면 그렇게 빨리 잘 팔리는가. 아무튼 문학의 일상화는 확실히 요즘 출판 트렌드인 건 분명해 보인다.
오은 시인의 언어가 부럽다. 특유의 무드와 감수성은 흉내 낼 수도 없다. 친밀성과 정확성이 특히 그렇다. 일상어를 시어로 전환시키는 탁월한 감각과 특히 농담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읽으면서 나는 "이게 노력으로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듦과 동시에 그의 능력을 재빨리 천재의 영역에 가져다 놓았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위로하는 나름의 방법이다. 능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시의적절 시리즈 안에 자신의 이름 한 번 넣어보고 싶을 것 같다.
5월 한 달은 매일 아침 이 책에서 발견한 단어들이 시가 되는 순간을 만났다. 보석을 캐내는 기분으로 한 장을 열었다가 닫았다.
책속 문장들
"잘 살아 있느냐고 묻는 대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물어야지. '지금'을 찌르는 대신, '지금까지'를 어루만져야지. 이는 마음을 쓰는 일일 것이다."
"잘 지내?"라고 물으면 상대가 지금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사람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동안 뭐 했어?"라고 묻는 것이 좋겠다. '현재'를 해부하려 하지 않고, 쌓아온 '시간들'을 쓰다듬어 주는 것이다. 그게 진짜 마음을 쓰는 거란다.
"영감은 없다. 그러나 찾으러 갈 수는 있다. 받을 수는 없지만 잡아챌 수는 있다."
영감이 쿠팡 배달처럼 집 앞에 떨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럴 리는 없고. 작가들은 늘 글감에 굶주려있다. 이건가 싶으면 확신이 없고 저건가 싶으면 남이 출간한 책에 이미 있는 내용이다. 오은 시인은 "아, 이거구나!" 하고 낚아챌 수는 있다고 말했지만 과연 그렇다고?
"삶을 이끄는 것은 동사임이 틀림없지만, 삶의 곳곳에서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부사 같다."
'사랑하다', '떠나다', '울다' 같은 굵직한 애들이 인생의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정작 우리를 울컥하게 만드는 건 부사들이다. '살며시', '갑자기', '여전히' 같은 미미한 단어들이 마음을 콕 찌른다. 생각해 봐라. "여전히 너를 사랑해"라는 문장에서 눈물을 담당하는 단어는 '여전히'다.
"농담을 던진다는 것은 우스운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삶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다. 함께 맥이 빠지고 생활의 무게에서 일시적으로 해방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 바보가 되겠습니다!"라고 선언하고는 스스로 먼저 바보가 되면 신기하게도 모두가 따라서 바보가 되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먼저 바보가 되는 용기를 갖는 건 중요하다. 바보가 되면 뻣뻣했던 어깨가 풀어진다. 농담은 잠시 관광특구에 들어가는 것이다. 한바탕 놀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다시 진지해질 수 있으니 마음껏 풀어져도 된다.
"책은 사람처럼 외면하지도, 인간처럼 질투하지도 않았다. 그는 남들과 비슷해지는 대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기로 마음먹었다."
책은 내가 3년 동안 안 읽어도 삐지지 않고, 다른 책들과 비교해도 질투하지 않을까?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은 짙투를 하다 하다 지쳐 얼굴이 누렇게 변하는 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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