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이 집 밖으로 나갔다.

디지털 미니멀리즘

by 김설

마음이 심란할 때는 왜 물건을 버리게 될까? 영화 고스트에서처럼 몸을 빠져나간 영혼이 물건을 버리는 내 모습을 본다면 이렇게 말하겠지.
"저건 단순한 정리 정돈의 차원을 넘었어. 저 여자 살짝 미친 것 같아. 조금 과격해!"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인간은 '던져진 존재' '던져진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순간이 바로 삶의 무게를 느끼는 순간이라고 철학자 하이데거가 어떤 책에서 말했다. (하이데거인지 확실하지는 않다). 아무튼 나는 그저께 밤에 이런 순간을 맞이했고 다음 날 아침이 되니까 나를 둘러싼 물건(책)이 갑자기 꼴 보기 싫고 버겁게 느껴졌다. 삶의 무게가 책의 무게로 둔갑하는 순간이라고 할까. 물론 마음이 평온할 때는 아무리 책이 많아도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무게가 느껴지기는커녕 책에 둘러싸인 게 뿌듯하고 행복해서 미친다.

마음이 편안할 때는 책을 끝없이 구입하고 빼곡해지는 책장을 보면서 흐뭇하다가 심란한 일이 생기면 책을 모조리 빼서 알라딘에 내다 팔거나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주거나 망설임 없이 버린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행동은 내가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삶의 무거움을 견디기 위해 가벼움을 추구했다가 어느 순간 그 가벼움이 견디기 어려워 공허해지는 것이다. 가차없다고 할 만큼 물건을 버리는 이 행위는 모순적 욕망의 표현일 것이다.

어제 책들을 거의 다 정리했다. 내가 쓴 책 몇 권과 읽지 못한 책 몇 권만 남겼다. 그것도 곧 정리하고 앞으로는 백 퍼센트 전자책으로 전환할 것이다. 심란함을 핑계로 책을 버린 건 이제 나에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의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남은 인생에서 나라는 인간을 규정하는 중요한 선택.




이렇게 디지털 미니멀리즘의 첫발을 뗐다. 앞으로는 축적의 독서에서 흐름의 독서로 이동할 것이다. 심란한 마음이 만든 빈 공간에서, 비로소 진정한 독서를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금 전에 책장이 집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재활용장으로 가는 거대한 그것은 한때 내 삶의 나침반이었다. 그럼에도 이 후련함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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