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와 인간성,시대를 초월한 감동_모스크바의 신사

자유를 잃은 상황에서도 품격이라는 것이 유지될 수 있을까.

by 김설





갇힌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한 호텔에 귀족 신분의 백작이 무기한 가택 연금을 당한다. 호텔 밖은 소련의 격변 속에 있다. 그는 호텔의 복도를 거닐며 만나는 사람들, 호텔 직원, 낯선 손님, 그리고 우연히 만난 어린 소녀에게까지 신사답고 친절하다.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일관적이다. 현실에서는 행방이 묘연한 삶의 품격을 나는 이 소설에서 발견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삶의 제약 속에 갇힌다. 앞뒤가 막힌 것 같은 어두운 삶의 길에서 서 있어 본 사람이라면 책 한 권, 누군가와의 대화, 그리고 작은 친절로 삶에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다. 하물며 유머, 따뜻함, 그리고 절대 꺾이지 않는 품위까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다. 우리는 흔히 말하지 않나. 내 코가 석자다. 나부터 살고 보자. 지금이 체면 차릴 때냐.

백작의 품위는 단순히 예의나 고상한 태도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품위를 나의 개똥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실존주의적 자기 창조, 타인과의 관계를 통한 공감, 그리고 작은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 태도로 재해석된다. 체제의 억압 속에서 자유를 박탈당하지만, 어떻게 인간성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는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책, 음악, 대화, 그리고 사소한 일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현실 파악도 못하고 한가한 짓이나 한다고 사람들에게 욕먹을 수 있는 너무나 평온한 일상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택 연금인데, 그런데도 매일 아침 면도를 하고, 정장을 갖춰 입으며, 타인에게 예의를 다한다.


이 사람의 행동이 단순한 습관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적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현대적으로 보면, 디지털 시대의 과도한 연결성과 외부의 기대에 휘둘리는 삶 속에서 자기중심을 유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소셜 미디어, 경제적 압박, 또는 사회적 규범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 이런 제약 속에서도 나만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소설의 이야기가 이 정도에서 끝나면 조금 시시하다고 느낄 수 있을 텐데 다행히도 공감되는 포인트가 더 있었다. 소설은 품위가 홀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의 삶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며, 때로는 자신의 안위를 희생하면서까지 도움을 준다. 호텔이라는 작은 세계에서 타인과의 진정한 만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장한다. 이것은 개인주의와 경쟁에 치우쳐 타인을 도구로 대하거나, 디지털 화면 너머의 관계에 갇히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카뮈는 삶이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보았지만, 인간은 부조리 속에서도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커피 한 잔의 맛을 음미하거나, 동료와 나누는 짧고 사소한 대화, 낯선 이에게 건네는 미소가 품위 있는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카뮈는 참 일찍도 깨달은 모양이다.


아....나도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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