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칼날 앞에 선 한 여인의 처절한 투쟁기
『청춘의 독서』에서 유시민 작가가 언급했던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이고 현재적인 소설이 바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다.
겨우 48시간이다. 이틀 만에 한 여성의 삶이 완전히 박살 난다. 이 두껍지 않은 소설은 사회의 편견과 언론의 왜곡으로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뷜의 문장은 칼날처럼 예리하다. 그 안에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마주쳤거나 마주할 수 있는 불공정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론이라는 괴물의 민낯
평범한 가정부였던 그녀는 단 한 번의 선택—우연히 만난 남자와의 하룻밤—으로 인해 거짓과 낙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독일 최대 일간지의 표적이 된다. 기자들은 그녀를 '테러리스트의 정부'로 몰아가며 온갖 가짜 뉴스를 쏟아낸다. 언론은 그녀를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소비하고, 사람들은 여자를 비난하며 손가락질한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녀의 단호한 저항은 뷜의 간결하고 강렬한 문장을 통해 생생히 살아 숨 쉬는데 페이지마다 느껴지는 긴장감이 압권이다. 읽다 보면 감정이입이 되어 그녀의 억울함이 나의 심장을 쥐고 놓지 않는 기분이다. 읽는 내내 팔에 소름이 돋았다. 1974년에 쓰인 소설인데 마치 오늘의 뉴스 같았기 때문이다. SNS 마녀사냥, 언론의 선정적 보도, 무고한 시민을 짓밟는 권력의 폭력성. 이 모든 것이 50년 전 독일 소설 속에서 생생히 살아 지금의 대한민국에 도착한 것 같았다.
소설은 주먹을 휘두르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가짜 뉴스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것은 오히려 더 무서운 폭력임을 보여준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 절망의 끝에 선 카타리나가 내리는 결단. 진짜 폭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폭력에 맞서는 개인의 절망적인 저항이 얼마나 비극적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얼마나 쉽게 타인을 판단하는가? SNS에서 누군가의 실수를 보고 단 몇 초 만에 그 사람을 비판한 적은 없나? 뉴스에서 한쪽 면만 보고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지은 적은 없었나? 내가 무심코 내린 판단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쉽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뒤에 숨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는다. 이 소설은 나에게 잠시 멈춰 서서 타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라고, 섣부른 판단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숨을 고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유시민 작가가 『청춘의 독서』에서 강력 추천했던 이유를 알았다. 덧붙여 영화가 있다는 걸 알고 찾아봤으나 정보가 없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입장에 대해 생각했다. 얼마나 억울할까. 소설로 읽는 나도 미쳐버릴 것 같은데 당사자는 어땠을까. 책장을 덮고 나는 이 여자의 명예 회복은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언론과 대중의 왜곡에 일일이 반응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낙인은 한 번 찍히면 쉽게 지워지지 않고, 이럴 때는 주변인들조차 언론의 공격에 휩쓸려 내 편이 되지 않거나 심지어는 가장 먼저 등을 돌린다. 설령 허위 보도가 바로잡히거나 무혐의 처분을 받더라도 이미 무너진 사회적 평판과 개인의 삶은 되돌리기 어려울 텐데 망가진 이 여자의 인생은 도대체 누가 책임 지나.
그렇다면 억울한 누명으로 인생을 통째로 잃은 사람들을 위한 실질적 복구 방법은 무엇일까 기껏해야 손해배상 정도겠지. 이 여자를 살리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주변인의 신뢰와 지지가 아닐까 한다. 그것만이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게 만들지 않을까. 그러나 저러나 상처가 회복되는 데는 정말 길고 긴 시간이 필요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 점이 열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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