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조절 장애가 있는 엄마입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by 김설






거꾸로 있어야 할 아기가 열 달 내내 똑바로 서 있었다. 아무리 운동을 하고 산부인과에서 시키는 대로 온갖 노력을 다해봐도 출산 전 마지막 진찰까지 아기는 끝내 돌지 않았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을 하게 됐다. 열 달 동안 입덧으로 고생이 심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냄새가 역했다. 집이라는 공간이 역한 냄새의 진원지라는 것이 놀라웠다. 먹을 수 있는 건 냉동실에 얼려 놓은 사각 얼음뿐이었다. 입덧으로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산모의 얼굴이 아니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불치병 환자의 얼굴이 되었다.아이만 낳으면 나무꾼에게 옷을 뺏겼던 선녀처럼 당장 날아갈 것 같았다. 손꼽아 기다리던 수술은 예정일보다 열흘이나 앞당겨졌다

새벽에 갑자기 배가 아팠는데 진통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병원으로 향했고, 진찰 후 긴급하게 수술이 결정됐다. 잠시 눈을 감았다 떴는데 남편의 얼굴을 빼다 박은 새빨간 얼굴의 아기가 내 옆에서 울고 있었다. 출산은 진정 축복이자 기쁜 일인가. 나는 그냥 얼떨떨할 뿐이었다. 밤새 심란한 꿈을 꾸다가 겨우 잠에서 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에서 이상 신호가 발견된 건 친정에서 몸조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밤중 수유를 시작하고부터였다. 낮과 밤이 바뀐 아이를 안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닌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순식간에 온몸을 덮치는 뜨거운 열감이었다. 엄동설한의 외출인데 양말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참기 힘든 더위를 느꼈다.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있으면 방바닥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정신을 차릴 수 없이 기진맥진한 이유가 단순히 많은 땀을 흘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병원에 가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사실 병원보다 더 급한 건 잠이었다.딸은 내가 몸 걱정을 할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결심이라도 한 것처럼 한결같이 울고 보챘다. 아기가 울다 지쳐 잠이 든 틈을 타 쪽잠을 자려고 누우면 잊고 있던 가려움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피가 날 때까지 긁어대느라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눈에 띄게 살이 빠지고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안고 있던 아이를 떨어뜨릴 지경이 되었을 때 병원에 찾아갔다.

갑상선 기능항진증, 생전 처음 들어보는 병명이었다.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약을 서너 달 정도 복용하면 금방 정상으로 돌아오는 가벼운 질환이라고 말했다. 지금처럼 사시나무 떨듯 손을 떨지 않고 온몸을 긁어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열심히 약을 먹었지만 의사의 말처럼 금방 좋아지지는 않았다. 갑상선 기능항진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포도알처럼 주렁주렁 연결된 갑상선 결절로 변했고 끝내는 감상선암으로 진화하면서 오랜 시간 나를 위협했다. ‘잘 관리하면’의 함정이 이렇게 깊을 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십 년의 투병 생활은 성격에도 변화를 주었다. 온화한 성격으로 타고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하루에 열두 번씩 기분이 좋다 나빴다 반복하는 변덕쟁이는 아니었는데 가족들이나 가까운 지인들이 질릴 정도로 기분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신경질은 당사자인 나만 모른 체 질기고 꾸준히 계속됐다.하루에 한 번이라도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면 안 되는 짜증과 화. 나는 매일 아기와 함께 우는 엄마였다.

정신병적 증세의 피해는 태어난 지 1년도 안 된 아무것도 모르는 내 아기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갑상선 기능항진증과 출산 우울증이 함께 찾아왔지만, 당시에는 마음의 병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우선 몸과 마음을 정상으로 돌려놨어야 했다.무지한 부모 때문에 아기는 열악한 양육 환경에 놓였다.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고, 엄마는 미친 듯이 신경질만 내는 사람이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은 진리다. 하루에 몇 번씩 딸아이의 우울증의 원인을 찾아내려고 애쓰다 보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울고불고 짜증을 내던 이십삼 년 전 그때의 지옥과도 같던 날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몸과 아픔이 아픈 엄마 때문에 아무 잘못 없는 딸까지 병이 들었다. 딸아이는 시작이 언제부터인지도 모르는 우울증을 키우며 병과 함께 자랐다. 나는 자신을 소홀하게 대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의 감정과 변화에도 무딘 엄마였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도 이만하면 잘 키운 거라고 자신을 칭찬하며 다독였다. 상처가 덧나고 고름이 밖으로 나와 병의 실체가 완전히 드러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나의 무지를 원망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며 자책한다. 더 늦기 전에 밑도 끝도 없는 자만과 독선을 내 마음에서 빼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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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마음속 묵은 감정을 꺼내 먼지를 털어야 한다. 영원히 버려야 할 것과 달래고 위로해서 보듬고 가야 할 감정들을 분류하기로 했다.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딸아이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 아이와 함께 좌절하고 우울해할 시간이 없다. 내 안의 아픔을 의욕적으로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막상 뒤집고 엎어보니까 예상보다 더 끔찍했고 남편이라는 넘기 힘든 복병을 만났다. 남편을 향한 원망과 미움이 그에게 여과 없이 전달됐다. 남편은 이번에도 지지 않겠다는 듯 독하게 응수했다. 매일 으르렁대고 독설이 오갔다. 서로를 향한 미움과 원망이 집안을 가득 채웠다. 비난, 원망, 미움의 감정은 전염력이 강했다. 가장 가깝고, 가장 사랑하는 아이에게 우울과 고통으로 변이되어 옮겨졌다. 딸아이를 덮친 우울은 딸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내 문제였다. 산 넘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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