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한 스푼 덜어내는 법
나는 딸의 우울증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다. 아이가 살려달라고 큰소리로 아우성을 치는데 어떻게 숨길 수가 있나. 불행 중 다행히도 딸은 전쟁 중인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보여준다. 고통을 침묵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감안하면 희망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미치기 직전이라고, 계속 이렇게 살 수 없다고, 아이는 온마음과 온몸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러다 말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다. 인생이 어떻게 매일 맑은 날만 있을까. 조금 참고 지내다 보면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딸아이는 어릴 때부터 심성이 약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의 얼굴엔 늘 꼬집힌 상처가 있었고 또래들에게 맞고 울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돌아왔다. 또래들과 싸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맞고 오는 아이라서 울화통이 터졌다. 차마 같이 때리라고 말할 수도 없어서 답답했다. 어떻게든 심약하고 내성적인 아이의 성격을 고쳐보겠다고 마음먹고는 강하게 키우는 방법을 택했다. 몸과 마음이 아프다고 울어도 아이가 흡족할 때까지 어루만져 주지 않았다. 눈물을 그치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어리광이 심한 아이로 자라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하지만 억지로 눈물을 그친 아이를 보면 이내 마음이 약해져서 아이가 원하는 것을 보상으로 주곤 했다. 아이는 숙명처럼 애정결핍과 과잉보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부모에게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지금껏 줄곧 아이를 괴롭히고 있는 자신감 부재나 열등감의 시작점은 어린 시절 겪은 애정 결핍이나 부모로부터 위로받지 못했던 감정들의 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따져보면 우울은 정말 오래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딸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진로를 일찍 정한 편이다. 유독 그림에 빠져있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눈에 띄는 재능을 보여서 다른 진로를 생각했다가도 다시 유턴을 하는 식이었다. 남들보다 빠른 결정을 했다면 더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다음 순서로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예술고등학교 합격을 목표로 아이를 몰아 부쳤다.
한 번에 합격하려면 성적은 지금 그대로 최상위권을 유지시키고 실기 실력을 위해 매일 화실을 보내야 했다. 숨 쉴 틈 없는 계획표를 만들고 아이를 그 안에 가뒀다. 당시엔 사업 실패로 남편의 벌이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집안 경제를 혼자 감당했던 때라 나는 나대로 저녁이면 녹초가 됐다. 아이가 힘든 내색이라도 하면 엄마도 힘들다는 말을 해서 아이의 입을 닫아버렸다. 원하는대로 진학을 했지만 기쁨보다는 겨우 한고비를 넘겼다는 생각만 들었다. 미술 대학을 진학하기 위해서는 잡은 고삐를 늦출 수가 없었다. 지난 3년보다 더 고통스러울 3년이 눈앞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점점 무서운 엄마가 되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이보그 같은 엄마였다. 대학만 보내면 아이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를 갈았다. 고삐를 잡은 손에서 피가 나는데도 고삐를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었다. 아이도 나름대로 이를 악물었다. 대학만 가면 지긋지긋한 엄마의 속박에서 해방을 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희망찬 미래를 상상하면서 대학 캠퍼스의 환상을 조금씩 키우는 듯 보였다. 하지만 아이가 공들여 키웠을 환상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깨져버렸다. 사회와 대학의 부조리가 아이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교수들에게 실망하는 일이 여러 번 생겼다. 학교라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불거지고 대학은 더 이상 꿈을 꾸고 이상을 실현시킬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가라앉아 있던 우울이 본격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다고? 대학이라는 곳이 원래 그런 곳이다. 네가 다니는 대학만 그런건 아니다. 다른 애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무 살 언저리를 즐기고 있는데 넌 왜 유독 이런 일에 예민한 거니? 그림이나 열심히 그려.
그 나이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은 깊게 들여다보지 않거나 무시하고 넘기는 것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눈을 가진 딸이 한편으로 대견하기도 했다. 무언가를 깨닫고 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이 성장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낙관했다.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태어나서부터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와 자식 간에 주고받은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우울증으로 변하게 될지 누가 짐작이나 할까. 나는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했다. 아빠 또한 경제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지만 아이를 사랑했다.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로도 한참동안 아이의 우울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참 어리석었다.
이제 나는 사람들에게 아이가 우울증을 겪는 환자라는 것을 솔직하게 말한다. 자랑도 아닌 걸 떠벌린다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과거의 아픔을 도려내지 않으면 우울에서 벗어나는 길이 점점 멀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마음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새살을 돋게 해주는 일을 더는 미룰 수가 없다. 아이가 침묵을 깬 이상 나는 있는 힘껏 돕기로 마음먹었다. 엄마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기쁨도 힘껏 느끼고 슬픔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불행의 그림자를 피해 도망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와 딸에게 닥친 고난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고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