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미안해
나, 탈색할 거야!
어? 어.... 그래.
아이는 엄마로부터 압력이 없는 삶을 원한다며 내적 독립을 선언했다. 노랑머리로의 변신이라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다. 나는 딸의 난데없는 독립 선언이 기뻤다. 엄마의 의견을 묻는 방식이 아니라서 좋고 이제는 외모에 조금씩 신경을 쓰게 되었다는 사실이 두 번째로 기쁘다. 두 가지 모두 우울증이 호전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 친구 만나고 와도 돼?
나 이거 먹어도 돼?
지금 자고 일어나면 안 될까?
아이는 하찮은 것까지 묻곤 했는데 질문을 하는 아이도 질문을 받는 나도 얼마나 하찮고 필요 없는 질문인지 모르고 살았다. 우울증 치료하면서 비로소 아이가 왜 그런 질문을 쏟아내는지 의문이 생겼고 늦게나마 이유를 물었다. 허락받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면 무섭게 혼이 났던 경험 때문이라고 했다. 사소한 것까지 물어보고 엄마의 하락을 받아야만 뒤탈이 없잖아 하고 대답했다.
예전 같으면 탈색을 하고 싶다. 하면 안 된다. 하면서. 티격태격했을 테고 언쟁이 길어지는 것이 싫어서 무조건 안돼 하고 아이의 의지를 단번에 꺾었을 것이다. 딸은 탈색할 거야 라는 말로 더 이상 엄마의 허락을 받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표현했다.
적극적으로 치료에 개입하면서부터 아이가 하는 말은 무조건 귀담아듣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웬만한 요구는 아이가 원하는 대로 따라준다.
탈색을 해도 예쁠 것 같아. 젊은 시절에 한 번쯤은 해볼 만하지.라는 긍정적인 의견을 말하면서 탈색이 하고 싶은 이유를 넌지시 물었다. 마지못해 허락은 했지만 사실을 반대를 하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찬바람이 쌩하고 불며 퉁명스러운 답이 돌아왔다.
왜가 어딨어?
단순히 머리카락 색을 바꿔서 기분전환을 하고 싶은데 이유가 있어야만 해?
엄마는 멋 내기 염색을 할 때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어?
말문이 탁 막혔다. 그래 맞다. 머리카락의 색을 바꾸는 일이 뭐가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이유를 붙여가면서 해야 할까. 아이의 말이 백번 맞는 말이다. 어차피 머리카락은 계속 자라고 탈색으로 상하더라도 잘라내 버리면 그만인 걸 그게 뭐라고 이유를 묻고 허락을 받을까. 애초에 반대할 이유가 없는 일이었다. 가타부타 말이 길어지면 반대하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심어줄까 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는 뜻을 전했다. 기분이 풀린 것처럼 보였지만 딸은 당장 미용실을 예약하지 않았다. 탈색을 선언했던 기세는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았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져서 탈색은 안 하기로 결정했니? 하고 물었다. 처음에는 당장 탈색을 하고 싶었는데 며칠 만에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요즘 다른 때보다 무기력한 증상이 심해져서 내심 걱정을 하던 중이었는데 역시나 다시 무기력에 빠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이 갈팡질팡하면 나는 나대로 아이를 따라서 갈팡질팡한다. 아이의 반응에 따라서 내 마음도 이랬다 저랬다 바뀐다. 아이의 의견에 반대했다가 의욕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면 안절부절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전과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뚜렷한 기준도 없고 이성은 작동을 멈추고 감정만 살아있다.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바뀌고 순식간에 벌어지는 일이라 아이뿐 아니라 나까지도 당황스럽다. 그런 엄마의 변화를 누구보다 잘 감지해내는 건 딸이다.
어쩌자는 건지.
그럴 때마다 아이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게 나는 어쩌자는 걸까. 이렇게 변덕을 부리는 엄마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얼마나 우스웠을까. 생각할수록 아이에게 미안했다.
오늘도 원하지 않는 곳으로 흐르는 감정을 붙잡으려고 감정 일기를 쓴다.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의 방편이다. 쓰는 동안은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성을 하게 된다. 마음 편히 의견을 나눌 수 없는 독단적인 엄마. 딱딱하고 엄하기만 한 엄마, 히틀러도 당신이 짱이라며 엄지 척을 남기고 갈 독재자 엄마, 무엇보다 자신이 문제가 많은 엄마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무지의 엄마였다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식을 보호한다고 했던 모든 행동과 말은 아이에게 감옥이었다. 그 안에 가둬놓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하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정해지는 식이었다. 어떤 날은 되는 일이 어떤 날은 안 되는 일이 돼버리기 일쑤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어리둥절한 채 엄마의 기분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쓴 것이다.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허락된 자유는 아이가 원하는 크기에 턱없이 모자랐고 허락된 자유 안에는 또 다른 구속과 규율이 숨어 있었다. 내 영역을 침범당하는 것은 누구보다 싫어하면서 아이에게는 자유 영역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수 없었고 싫어도 싫다는 말을 마음껏 할 수 없었던 아이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 같은 삶을 견디다가 태어난 지 이십 년 만에 결국 우울증이라는 난치병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켰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을 목숨처럼 여긴다. 특히 엄마와 자식의 관계는 영역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엉켜있고 하나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이는 내 소유였고 그래서 내 마음대로 키웠다. 엄마의 역할에 과도하게 몰입했고 철저히 이기적이었다. 그게 모성이라고 착각했다. 며칠 전 심리 상담 센터에서 같은 문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자녀가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예상보다 많다고 한다. 부모와 자녀가 사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늘 그 문제를 다루는 심리상담사 선생님들 마저도 그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했다. 다양한 사례를 만나고 연구하면서 반성을 하게 된다고 한다. 부모로서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으셨다. 힘을 내라는 격려인 줄은 알지만 많이 부끄러웠다.
어떻게 이렇게도 무지한 상태로 아이를 양육했는지 알 수가 없다. 누구도 막지 못했던 불도저 같은 성격과 터무니없는 행동들에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살았던 세월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 어쨌든 지금은 아이에게 낙제 점수를 받고 엄마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동안 까먹은 점수를 회복할 기회가 남아있는지 마음이 조마조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