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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Apr 21. 2020

고양이 똥을 뭉개는 아침

나는 집사의 집사입니다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은 집사다. 나는 금순이, 그냥 순이, 춘자 같은 토속적인 이름을 원했으니 집사를 처음 집에 데려올 때 무척이나 적극적으로 입양을 원하던 딸아이의 반대로 집사는 금순이나 춘자가 되지 못했다. 처음엔 집사라는 이름이 내키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집사라는 이름이 좋아졌다. 이름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는 이름에서부터 암컷과 수컷을 구별 짓지 않아서다. 나는 집사의 집사이고 집사는 우리 집 고양이 이름이고 우리는 운명처럼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어딘가 모르게 통하는 기분도 들고 꽤 유쾌하다.우리 집사는 한국 고양이와 아비시니안을 믹스한 고양이다. 외모에서는 한국 고양이보다 아비시니안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데 유난히 긴팔과 다리와 긴 목 그리고 작은 두상이 특징이다. 물론 풍기는 분위기도 아비시니안처럼 귀족적인 느낌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나 고양이나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성격은 냥아치에 가깝다. 어슬렁어슬렁 배회하면서 집 안의 쓰레기통 뚜껑을 손으로 열고는 코를 들이밀고 냄새를 맡거나 작은방 붙박이장에 숨겨놓은 낚시 장난감을 꺼내 입에 물고 걷는 것과 뛰는 것의 중간쯤의 속도로 냥냥 거리며 와서는 내 눈 앞에 퉤 뱉어놓는다. 숨겨 놓았던 장난감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한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만큼 계속해서 놀아 달라고 보채는 넘치는 에너지에 놀라고 만다.


















집사는 며칠 전에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달려있던 실을 20센티 정도 먹어버렸다. 눈 깜찍할 사이에 생긴 일이라 말리고 혼낼 겨를도 없이 생긴 그야말로 사고였다. 이 위험한 사건은 이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할 문제는 절대 아니다. 호들갑을 떨어도 모자랄 정도의 사건이고 고양이에게는 긴박하고 위험하고도 응급한 상황이다. 메우 응급한 상황임에도 막상 병원에 가면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의사의 입에서 일단 똥을 싸길 기다리거나 구토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만 듣고 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상한 물건을 집어삼킨 것이 괴로워져서 구토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불행하게도 집사는 아직까지 구토 증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어제부터 오매불망 집사의 똥을 기다리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평소와 다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실을 삼킨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비슷한 일을 겪은 고양이의 사례를 검색하고 얻어 낸 지식으로는 일주일이나 지난 뒤에 이상한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지금 마음속으로 세계대전보다 더한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실을 삼킨 순간 바로 병원에 데려갈 걸 후회하는 마음과 장난감을 방치한 부주의함을 자책하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집사의 화장실의 모래를 헤집고 똥을 수색한다. 비닐장갑을 두 개 겹쳐 끼고는 귀한 보석이라도 찾아내듯이 똥을 뭉개고 또 뭉갰다. 어제까지는 끈이라고 할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게 아닐까 하는 것을 발견하긴 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급한 화장실 볼일을 제쳐두고 집사의 화장실부터 검사했다. 야속하게도 집사는 밤새 똥을 싸지 않았다. 며칠 동안은 화장실과 똥에서 벗어 날 가망성은 없어 보인다. 이놈의 고양이 애물덩어리! 누군가가 더럽지 않냐고 묻고 싶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곳에 기꺼이 대답을 남겨 놓는다. 더럽다는 생각은 정말 손톱만큼도 없다.









나는 똥쟁이에 아무거나 집어 먹는 냥아치 집사를 심하게 사랑한다.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은근해야 된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있고 사랑을 구걸하면 할수록 점점 고양이가 멀어진다는 말도 어딘가에서 귀동냥한 적이 있기 때문에 짐짓 점잖은 척 하지만 원래 나는 사랑에 빠지면 점잖게 은근한 사랑을 하는 인간이 아니다. 요란하게 티를 내고 쏟아붓다 못해 사랑을 받는 쪽에서 숨이 막힐 정도로 퍼붓는 편이다. 사람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을 막론하고 일단 마음을 주었다 하면 그렇게 주책바가지가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사랑을 하다가 내가 먼저 정이 떨어져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냉정하게 돌아선 적도 있다. 그러면 상대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배신감을 느끼는 모양인데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한결같이 말해왔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

프랑스의 소설가 겸 평론가 아나톨 프랑스는 사물을 보는 특이한 눈을 가졌고 아름다운 문체를 사용했던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그런 그가 말했다. 한 동물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우리 영혼의 일부는 잠든 채로 있다고. 나는 그가 왜 노벨상을 수상했는지 그 한 줄의 문장으로 알게 됐다면 너무 과한 것일까.












나는 집사에게만큼은 언제까지나 한결같은 사랑을 주려고 한다. 인간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뛰어넘을 수 없는 강력한 존재가 있기 마련이다. 부모에게는 자식이라는 존재가 그렇다. 그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지고 흐물흐물해진다. 자신이 자식에게만큼은 강해질 수 없는 심약한 부모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싶다면 부모가 돼봐야 하듯이 자신의 마음속에 동물에 대한 사랑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려면 동물을 키워봐야 안다. 내가 동물을 이렇게까지 사랑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오히려 충분한 사랑을 주지 못하는 냉정한 사람일까 봐 데려오기를 꺼려하는 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나처럼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 의외의 것이 끼어들려 한다면 무조건 겁부터 낼 것이 아니라 은근슬쩍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나쁘지 않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나처럼 느지막이 끔찍하게 사랑하는 대상이 생길 수도 있다. 남은 여생을 작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 무언가에게 푹 빠져서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리라 다짐하게 될지도 모른다. 왜 아까운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한낱 동물에게 특히 고양이에게 쏟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건 논리적인 이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와는 염연히 다른 것이라고,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 사는 고양이를 길들였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고양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지만 정작 길이 든 건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또한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 집 고양이 집사에게 완벽히 길이 들어버린 집사다. 집사의 화장실 모래를 파헤치러 가는 길에 몇 마디 적어 놓는다는 것이 이렇게 말이 길어졌다.똥 푸러 가는데 이렇게 행복하다니 고양이는 마법을 부리는동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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