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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y 08. 2020

어버이날만 효녀입니다

그리움을 담아












일주일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친정에 도착했다. 아무 생각 없이 드나들던 막다른 골목의 오래된 2층 양옥집이 보이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려는 걸 참았다. 이상하게도 28년 동안 엄마에게 품은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으니 그냥 살았던 것처럼 태어났을 때부터 내 엄마였으니 사랑받는 것도 당연하게 여겼다. 오히려 왜 이 험한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삶의 고뇌 속에서 살아가게 하셨을까 하는 원망 섞인 마음이 많았다. 엄마가 기다리고 계실 집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이르자 신혼여행의 고단함과 안도감에 허둥지둥하다가 무거운 캐리어와 함께 기우뚱하는 몸을 불과 며칠 전에 남편이 된 남자가 겨우 붙잡아줬다. 여행 내내 잠을 자다가 문득 잠에서 깨면 옆에서 잠든 남편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결혼이 현실인지 꿈인지 모르겠다. 신혼여행 내내 내가 어쩌다가,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하게 된 건지 차근차근 생각하느라 무척이나 피곤했다. 결혼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있던 이유가 6개월의 짧은 연애기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무언가 설명이 부족하다. 난데없이 감행된 결혼으로의 도망은 몇 마디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아픈 엄마. 내가 커가는 내내 아프기만 했던 엄마.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서 처음으로 엄마의 삶이 얼마나 외로울까 생각하게 되다니. 그동안 나는 마음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았다고 솔직히 고백해야겠다. 도망가고 싶다고. 엄마의 보호자로 사는 삶에서 손을 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죄책감이 밀려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결혼이라는 이벤트가 꽉 막힌 숨을 시원하게 몰아 쉬게 해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일시적으로 시킨 일이 결혼이었다는 것을 깨닫기엔 너무 늦어버린 친정행이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모든 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저지른 일들이 후회스러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앞으로 엄마가 아프실 때마다 살뜰하게 챙겨줄 사람은 무뚝뚝한 남동생이다. 혈기가 왕성한 20대 초반의 청년이 아픈 엄마를 살뜰하게 챙겨드리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남동생에게 엄마를 부탁하면서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엄마는 신발을 벗어 놓는 곳에 의식을 잃고 누워 계셨다. 무슨 정신으로 응급차를 불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새 신랑은 응급실 앞에 앉아 있었다.

엄마는 지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당뇨병이 발병하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사위와 딸에게 먹일 음식을 준비하면서 당신은 하루 종일 아무것도 드시지 않고 있다가 저혈당 쇼크가 와서 쓰러지셨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도착하기 직전에 쓰러지셨고  일주일 정도 입원하면 무사히 집에 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그제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어쩌면 나보다 더 당황했을 남편을 먼저 집에 보내면서 엄마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친정에 있겠노라 말했다. 하루아침에 내가 살던 집은 친정이 되었다. 앞으로 살게 될 집은 내 취향에 맞게 꾸민 신혼집이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엄마가 아프시자 나는 갑자기 효녀가 되었다.

입원 용품을 챙겨 오기 위해 집으로 아니 친정집으로 갔다. 찬찬히 집안을 살펴보니 또렷하게 하나둘씩 보이는 쓰러지기 전의 엄마의 흔적들. 혼자서 준비하셨을 많은 음식들, 압력솥엔 갈비가, 고운 보자기엔 이바지 음식까지, 이렇게 많은 음식을 해놓고 정작 당신은 저혈당이라니.

하나뿐인 딸의 결혼은 엄마에게 병이  정도로 힘이 드셨던 건가. 엄마는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에게 느끼는 허전함을 맏딸인 나에게 의지하며 살아오셨다. 결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여겼던 결혼 후의 인생. . 희망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예상보다 빠르게 기운을 차리셨고 예전의 소녀 같은 연악한 엄마로 돌아오셨다. 크던 작든 무슨 일만 생기면 나를 수시로 불러대는 엄마로 돌아오신 거다.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엄마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며칠 만에 기진맥진했다. 처음의 열정과 알팍한 효심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조금씩 엄마가 귀찮아졌다. 그리고 나는 당연한 듯 남편이 있는 내 집으로 갔다. 결코 발걸음이 가벼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무겁지마는 않았던 29세의 철딱서니였다.

엄마는 내가 당신을 귀찮아한다는 걸 아셨는지 너무나 빨리 떠나셨다. 엄마를 못 뵌 지 벌써 십 년도 넘었다.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심은 어버이 날에 돌아오는 도돌이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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