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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y 13. 2020

편의점 가는 기분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












언제부턴가 타인을 닳고 닳은 거짓말쟁이로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부터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마음을 열 엄두조차 내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감춰진 의미만 찾으려 했고 어렵게 감춰진 마음을 찾아내면 독심술이라도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평가했다. 내가 누군가를 그만큼 쉽게 오해했다는 뜻일 것이다. 그건 죄 없는 사람을 모욕할 정도였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는 현재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스페인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보고 들을  있는 세계는 지극히 좁아터졌고 어린아이 손바닥보다 작은 창이 하나 열려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겨우  창을 통해서만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창은 우리가 읽어 마땅한 바로 책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창으로 들어가길 끝까지 주저했더라면 나는 계속해서 나의 아픔과 타인의 고통을 모른  살았을 것이고 누군가를 행해 계속해서 미움과 증오를 키우며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며칠 사이 세상은 다시 어지러워졌다. 지난 두세 달 동안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들고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끝내는 싸워 이겼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던 코로 바이러스가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은 겪어본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말이 맞는 말이라면 지금 우리는 처음보다 더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우리를 일에서, 삶에서 멀어지게 만든 사람들을 향해 분노한다. 하지만 한 발 나아가 생각해보면 지금 비난받고 있는 소수자의 무리 속에 나도 서 있었는지 모른다. 누구나 한때는 그렇지 않은가.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라는 아웃사이더 형 소수자로 살아가다가 "나는 남과는 다르지"라는 권력형 소수자로 변하는 건 아닌지. 가난한 사람들, 소수자들, 소외된 사람들은 그런 이유로 경계해야 할 대상이나 배제시켜야 할 사람들이 아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 』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실감 나게 묘사한 부분이 있다. 주머니가 가난한 사람들과 주머니는 두둑 하나 영혼이 가난한 사람들을 묘사한 그 문장을 읽으며 깜짝 놀랐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내 얘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곁눈질해보고 언제나 겁먹은 눈으로 자기 주위를 둘러보면서 남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혹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꼴 사나운 인간이라고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살피고 있는 건 아닐까. 나를 흉보는 것은 아닐까. 이런 쓸데없는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 가난한 사람이라면 나야말로 가난으로부터 영원히 구제불능이다.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삶은 괜찮은지. 당신은 괜찮다는 그 삶이 나는 왜 이다지도 지랄 같은지. 혼자서 감당해 내느라 당신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정하게 묻지 못하고 품어주지 못한 나는 또 이대로 괜찮은 건지. 누군가의 안부를 염려하며 살기에는 각자 너무 바쁘고 팍팍한데 삶이란 것은  왜 이렇게 어둡고 번잡스럽기만 한 건지.

막차도 끊기고 인적도 끊긴 어두운 길을 걷고 밤을 낮 삼아 취객들의 운전대를 대신 잡아주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 햇빛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는 지하 골방에서 당장 누구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 글을 쓰는 이름 모를 작가들. 그나마 붙들고 있던 일자리마저 놓치고 국가에서 주는 지원금 금액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가 없다. 가까운 사이인데도 나는 당신들을 몰랐다. 당신들이 하고 싶은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과 결국 같은 말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예전에는 그들이 하는 말을 흘려 들었지만 지금부터는 열심히 들을 것이다. 듣는 일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다음에는 조금씩 말할 것이다.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진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그러니까 서로를 향한 비난을 이제는 거두자고.






















책『편의점 가는 기분 』은 상당히 읽을만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추구한 삶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와는 달리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책 바깥의 세상은 삭막하기 그지없다. 그 간극이 너무나 커서 세상이라는 곳이 살만한 곳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일이 버거웠지만 책은  최선을 다해 나를 돕고 있었다. 아직은 포기하기 이르다고. 세상은 천천히 바뀌는 중이라고.

책에 등장하는 나는 할아버지를 도와 편의점을 운영하는 18세의 소년이다. 편의점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의 경계에 서서 추위에 떨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 준다. 야심한 밤에 바람처럼 들어와서 컵라면을 후루룩 마시듯 먹고 다시 바람처럼 사라져서 훅 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가 한 말을 마음에 새겨본다.



"사람들은 점점 비참해지고 있다는 거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 입 다물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걸 다 알고 있을 걸? "

"뭐가 잘못돼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글쎄, 의견이 없어서겠지. 우린 의견이 없어. 의견을 잃어버렸어."

"한 사람이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건 변수 하나를 잃어버리는 거야.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 하나가 사라진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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