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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May 30. 2020

그 줄에 나 좀 끼워줘











사실 요즘 여기만 들어오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알다시피 생각이 많으면    이상은 쓸데없는 잡생각이 대부분이다. 지금  글도 아침일찍 남편과 마트에 가서  쌀통을 채울 쌀을 사고 커다란 수박을 한덩이 사와서   크기로 잘라 냉장고에 그득그득 넣어 놓고 반찬을 하기 귀찮을 때마다 간단히 해먹을  있는 에어프라이기용 돈까스도 구입해서 냉동실에 쟁여놓고 나니까 왠지 모를 넉넉함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쓰는 토요일 오후용 글이라고   있다.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한  서너달이 조금 넘어간다. 이만하면 그럭저럭  왔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과분한 관심을 받았다고도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동안 브런치에 쏟아부은 노력에 비하면 성과가 나쁘지 않다고 자평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만 오면 작가들열정 대단해서 감탄하는 마음이 생기고 다른 작가의 브런치를 기웃거리다 보면 자존감의 크기가 점점 줄어 들다가 급기야는 손톱만한 크기로 줄어들어 버린다. 어느새 있는대로 주눅이 들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나란 사람 이런식으로 안이하게 글을 발행해도 되는 건가. 글에 힘을 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더라도 이건 너무 맥이 빠지는 글만 쓰고 있는건 아닌지. 모두가 남몰래 글쓰기 쪽집게 과외라도 받았는지 하나같이 매끄러운 글을 발행하고 있다. 그리고 글의 제목은 다들 어떻게 그리도 기가 막히게 붙이는지.나는 제목을 정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같은데.

















사실 브런치로 그럴듯해 보이는 다음 일을 도모하거나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싶거나 그런 건 없었다. 그럴 주제도 못되지만 번잡스럽고 어수선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뒷방에 앉은 노인처럼 조용히 이러고 있는 것도 나름은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생산해 낸 글을 마음으로 읽어주고 공감하고 울고 웃는 일상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되는지. 그것이 나에게 있어 행복을 체감하는 유일한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됐다. 경쟁보다는 격려가. 시기보다는 더불어 성장하는 것이 훨씬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안다. 응어리진 마음을 꼭꼭 주물러 보드랍게 만든 다음 하나 둘씩 펼쳐 고운 문장으로 만드는 이 소소한 글쓰기가 좋아서 브런치에 입성한 것이 참으로 행복했었다. 브런치는 몽글몽글한 마음을 골고루 늘어놓을 편안한 돗자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랬던 내가 요듬은 부쩍 신경 쓰이는 일이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노출이 잘되는 검색어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브런치 운영진이 노출 시켜주는 글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분석한다 한들 크게 달라질 일인가. 자신의 글이 가진  고유의 색을 버리고 남의 글을 따라한다고 제대로 된 글이 써질 리가 없다. 아무튼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달까. 나름대로는 글을 쓰고 있는데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건지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도를 닦은 사람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조회수 같은 건 신경쓴 적도 없는데 이상하게 조금씩 숫자와 그래프에 민감해진다. 나는 말과 다르게 무언가를 크게 기대한 걸까.














이쯤되니 궁금해진다. 이곳의 작가들은 한두 번씩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지?  악! 소리 한 번 못 내고 사라지는 브런치 작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만큼의 불안을 키우고 계신건지요? 나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들은 글쓰기에 대한 강의도 듣고 조금 더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우러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 어떤건지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지만 게을러서 그런지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들지는 않는다. 어설프지만 오직 솔직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만족해야겠다 생각하고 있다.다른건 몰라도 솔직하게 쓰는 것 만큼은 자신이 있으니까. 있는척, 배운척, 똑똑한척, 아는척이 제일 어려우니까 없으면 없는대로 밑천을 내보이는 글쓰기를 할 수 밖에는 없다.



















사실 내가 꾸준히 관심이 갖고 있는 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중년 여자 사람들이다. 자녀들은 어느 정도 성장했고 이제야 빡빡한 일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여자들. 잉여의 시간을 무엇에 집중하며 보내야 할지 모르는 여자들. 남편과 애들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돌볼 시간 없이 살았던 분들, 고된 삶의 여정에서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는 중년의 주부들. 내 글쓰기의 출발은 바로 그런 사람들과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하고 위안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몰려다니며 떠들어대면 수다로 밖에는 여겨지지 못할 이야기들. 조금만 큰 소리로 말하면 기 쎈 아줌마로 치부되어 버리는 사람들. 앞으로의 삶 뿐 아니라 죽음까지도 염려해야 하는 나이가 된 사람들. 그들의 웃기고 슬픈 이야기를 이대로 조용히 묻어두기에는 어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정제시켜 글로 바꾸면 그것이야말로 치유의 글쓰기가 된다고 생각했다. 중년 여자 사람들은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일을 겪어 냈으면서도 억울하게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고 내가 그들이었기 때문에 글쓰기를 통해 사물과 인간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싶은 욕구가 일었다. 내 브런치가 검색에 밀려나듯 중년 여자 사람은 치열한 세상에서 은근슬쩍 밀리고 있다. 여기서 나이를 운운할 필요가 있냐 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원래 자신이 그 입장이 되어야만 알게 되는 것이 있는 법이다.

어쩌다보니 주변 세계에 대한 애정을 다 잃어버리고 회색이 되어버린 삶에 이제는 고운 색을 덧칠하면서 살고 싶다. 세상의 대열에서 한참을 밀렸었지만 이제는 다시 끼어들 자리가 있는지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 세상이 조금만 자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똑같이 내 코가 석자. 모두가 각자도생에 여념이 없지만 브런치라는 돗자리 위에 함께 앉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동고동락하는 동료가 있는 것 같아서 참 좋다. 시시콜콜한 나의 브런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 놀랍게도 89명이 되었다. 앞으로도 쭉 같이 놀자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썼다. 내가 쓴 글이 어떤 때는 형편 없음을 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것은  89명의 아여쁜 영혼들이 이 곳에와서 잠시나마 시름을 망각하고 돌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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