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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29. 2020

실패가 너무 많아 한가지만 말할게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컴퓨터 화면을 열고 백지 앞에 앉은  30분이 지났지만 실패의 순서경중을 따지느라 머릿속이 복잡하다. 이건가 싶으면 저게 걸리고 저건가 하면 다른 실패담이 줄줄이 사탕처럼 연결되어 어느 마디에서 잘라야 할지 난감하다.  문장을 펼쳐 놓으니 다른 실패들이 아우성을 친다. 실패담으로는  5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들으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대부분 그렇듯 이야기의 중간쯤에는 결말을 예감할  있는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있다. 설레발이 길면   강정이라고요? 지금 읽고 있는  글이 뻔한 스토리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고요? 마지막에 가서는 실망을 주겠구나 예상한다면 당신은 선견지명이 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인생에 있어 실패라는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니까. 매일매일이 실패하는 것이 인생 아닌가. 50 동안 실패가 누적되어 새로운 실패가 다가온다고 해도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삶에 있어서 실패란 그런 거다. 지금부터 나는 노고와 시간을 들여 실패담을 무용담으로 만드는 마법은 부리지 말자고 자신과 약속을 한다. 남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자신의 실패에 대한 좌절감을 덜어보려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글을 쓰라는 뜻에서 카카오 브런치에서 마련한 이벤트. 거기에 걸려들어 실패담을 늘어놓을 작정을 하는 나도  나다. 글쓰기에 귀신같은 재주가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실패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펼쳐 놓을지 너무나 궁금하다. 실패를  실패답게 포장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내가 저지른 실패를 거울삼아 인생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었다는 식의 교훈적 내용을 비웃으며 나만의 방식으로  것이다.


















나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 긍정적인 그 무엇도 얻지 못했다. 사람을 조금은 더 멀리하게 되었고 나의 선택을 의심하게 되었으며 우울이 깊어졌다. 딱 한 가지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다른 한 가지가 변했다. 모든 실패는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낸 일이라는 것과 실패를 서슴없이 말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결혼에 실패했지만 여전히 이혼하지 않은 오십 대 여자의 이야기다. 남편의 경제력이 꽝이라는 사실, 자신의 경제적 무능함을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으로 만회하려는 오랜 습관, 게으름, 시종일관 자신의 인생을 부인에게 의지하려는 태도,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자격지심 그런 남편을 탓하며 이제 와서 내 인생의 실패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결혼하고 십 년까지는 어이없는 일이 많았지만 누굴 탓하고 원망하는 일에 시간을 쓰기에는 내게 씌워진 가장의 책임이 무거웠다. 이혼도 타이밍이다. 홀로 설 돈도 없고 운도 없고 현명하지도 못해서 이혼하기 가장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 미련이 남았다기보다는 용기가 없었고 아직 어린 딸아이가 걸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결혼에 실패하기 쉬운 사람의 천성이다. 결단이 어려운 사람이면서 웬일인지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재단하고 원하는 모양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이상한 자신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나를 희생하는 일이 습관이 된 채 인생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허비했다. 지금 나는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그 시간들이 내 실패의 증거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소리도 없이 너무나 아득해서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한다. 어느 날 문득 흘러가는 시간 속에 홀로 멈춰있는 나를 알아챘다. 해야 할 일을 한 가지도 못하고 사는 기분이 들어서 외로웠다, 세상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시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랜 시간 방황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했다.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그것을 표현할 단어가 부족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충분히 생각하며 산다고 착각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몇 년 동안 싸움과 언쟁만 하고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을 계산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실패했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 본격적으로 후회에 접어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후회할 시간이 없다고 다그치지만 나는 후회의 시간조차 무한대로 필요했다. 충분히 울고 후회하지 못하면 다음 생각으로 건너갈 힘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 졌다. 무엇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통제하는 법을 알고 싶었다. 주위를 기울여야 했지만 놓쳤던 것들을 알아야 했다. 나쁜 경험에서 어떤 의미를 뽑아낼지, 어떤 것을 의식적으로 선택할지를 배우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곤경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실패가 두렵지만 그전처럼 생각 없이 시간을 버리지는 않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다.     
















실패를 인정한다고 다른 실패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실패가 나에게 도달하기까지 시간을 조금 늦출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성공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다. 나는 성공만을 염원하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무언가를 이해하다는 것은 그 이해가 이미 그의 생에 아무 의미가 없어졌을 때에야 가능해진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실패와 성공을 완벽히 이해했다. 내 생은 이제 실패니 성공이니 따위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은 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믿게 됐다. 사람들의 사심과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연속해서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그런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를 새기며 사는 것이 왜 중요한지 나는 모르겠다.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들을 뒤로하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성공만을 향해 가기에는 인생에서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내 이야기는 이것이 전부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개인의 서사는 지극히 아름답다. 나락으로 떨어졌고 누군가에게 철저하게 짓밟혔고 지나치게 세속적이고 얼굴을 들 수 없게 부끄럽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은 고독으로 채워진 나의 서사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 있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내 인생을 가만히 손에 들고 들여다본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것이 명확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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