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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l 14. 2020

그렇게 책이 된다










소망이 없으면 불행하다. 원래가 그렇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데도 마음속에 소망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먹고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소망 따위는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된다. 아니면 먹고사는  자체가 소망이 되기도 한다. 소망을 잃어버리고 살다 보면  빈자리에 어느새 불행히 슬그머니 들어와 앉는다.  이야기는 나의 책『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에 담지 못한 오래된 불행에 대한 고백이다.











불행이 내 삶에 머물고 한동안은 내 엄마의 삶에 불행이 깃든 이유를 찾는 일에 몰두했다. 불행의 당사자인 엄마에게서는 결국 이유를 찾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만 분명해졌을 뿐이다. 엄마의 불행은 당신이 스스로 만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시작은 내 아버지와의 결혼이었다. 불행은 어느 날 문득 엄마에게 다가와 생의 기운을 조금씩 뺏은 뒤 삶의 의욕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급기야는 사람을 시들시들 말라 죽였다. 마음에 소망을 품는 일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 바로 불행의 위력이다. 어쩌다 희망의 끈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날이 찾아와도 선뜻 손을 뻗지 못했다. 이미 그 생애는 희망보다 불행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모든 이야기들은 혼자 간직하는 비밀이 된다.












엄마는 당신의 인생이 불행하다는 것을 온몸과 온 얼굴로 표현했던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세상을 다 잃어버린 듯한 엄마의 얼굴을 살피면서 혹시나 엄마가 진짜 세상을 떠나겠다는 결심을 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했었다. 물론 그때는 나의 불안감이 엄마 때문인지도 몰랐고 심지어 내가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아이인지도 몰랐다. 안타까운 것은 당시 나의 불안을 보살펴 줄 어른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불안감을 느낀 때가 너무나 어린 나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우연히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섯 살이던가. 매일 밤 나와 동생을 놔두고 대문 앞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서있다가 들어오는 엄마를 잠든 척하면서 기다렸던 밤. 젊은 부부는 그들에게 찾아온 불행을 감당하느라 자식의 불안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무섭고 외로운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엄마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모든 것이 미숙했다. 엄마의 미숙한 부분을 유일하게 채워 줄 아빠는 엄마보다 조금 더 미숙했다. 정말 오래된 이야기지만 줄곧 나의 인생을 떠도는 기억이다. 이유를 모르는 불안한 밤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불안의 최초다. 엄마가 곁에 안 계신 지금은 엄마의 불행만이 살아남아서 나를 엄습해올까 두렵다. 불행은 엄마에게 했던 것처럼 내 영혼을 갉아먹고 다음 대상자를 찾아 헤매다가 딸에게로 갈까 봐 겁이 났었다.

아이의 우울을 목격할 때마다 불행의 되물림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에게서 출발한 우울이 나를 통과해 내 딸에게 도달한 과정을 되짚으며 나의 운명을 원망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두렵고 약해졌다. 낮에는 멀쩡한 나로 살다가 밤이면 멀쩡하지 않은 채로 앉아 있었다. 나는 내가 아픈 곳을 끝내 찾지 못해 두리번거렸다. 나에게 도달한 불행이 딸에게 향하지 않고 차라리 나에게 고여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암흑 속에 홀로 서있다가 피터 한트케의 엄마를 만났다.














한참 피터 한트케의 책『소망 없는 불행』을 읽을 때였다. 드디어 내 비밀을 털어놓을 사람을 만난 것이다. 딸의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내가 우울과 불면으로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난 또 다른 엄마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었다. 움푹 꺼진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당신의 마지막 선택이 맞느냐고 물었다.











"내가 이토록 상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나를 불행으로 이끈 모든 것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이해하는 것이 지금은 더 어렵습니다."

"당신의 선택이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을 위한 일이었고 지금도 후회가 없다면 기꺼이 당신의 선택을 따르겠습니다."


그녀는 내게 앙상해진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가장 앞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당신의 딸이 아니라 당신 자신입니다."

" 자신을 지독하게 사랑하세요."

"그다음에는 오늘 밤처럼 책 속에서 먼저 불행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지팡이 삼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세요."


나는 착한 아이가 되어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설사 그녀의 말을 듣더라도 당장 달라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더 오래도록 울었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엄마가 딸아이는 얼마나 버거웠을까. 조금 더 살기 위해 책을 붙잡는 일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니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있는 지팡이를 빼앗기 위해서라도 책을 내 앞으로 끌어당겨야 했다. 불행은 더 이상 내 삶을 멈추게 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차츰 불행을 외면하지 않게 되었다. 적극적으로 불행을 표현하고 나의 불행을 글쓰기로 확장시키기로 결심했다. 한참 지나고 보니 불행은 어느새 소망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책이 되었다.









 



(덧붙임)피터 한트케의 어머니는 그가 28살일 때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소망 없는 불행> 은 자살한 엄마의 고통스럽던 삶을 회상하며 쓴 책이다.  죽음으로 향해가는 글이 시종일관 담담하고 냉정해서 놀랍고 신기했다. 남에게 들은 슬픈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다듬고 각색해서 완성된 책이 아닐까 착각을 할 만큼 감정의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글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은 쓰리고 아프다. 일부러 그렇게 쓴 글이라고 에필로그에 쓰여 있었지만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성숙한 인격체는 부모의 자살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질렸고 한편으로는 그 담담함이 부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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