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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23. 2020

고양이를 멀리하세요











한동안 하루의 대부분을 고양이를 관찰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은 당장 처리해야 하는 자질구레한 일이 생겨서 고양이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 줄었지만 그동안 고양이를 유심히 관찰한 시간을 대충 계산해봐도 200페이지짜리 책 한 권을 빼곡하게 채울 만큼의 원고를 쓸 수 있는 시간 정도는 된다. 그토록 매일 한결같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사랑 중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다는 짝사랑은 더군다나 해본 적이 없다. 난데없이 나에게 찾아온 그 마음이 너무나 생경해서 유독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졌다.



너는 지금껏 돌려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니?



동물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지를 생각해.보는 건 그나마 동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에게나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 질문조차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었고 한 번도 동물과의 연결고리를 떠올려 본 적도 없었다. 청룡열차라는 이름의 롤러코스터와 제법 규모가 큰 동물원이 있는 어린이대공원 근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에는 색다른 소풍 장소를 물색하는데 조금도 관심이 없는 선생님들만 근무를 했었다. 일년에 한번봄이나.가을에는 어김없이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갔다. 고학년이 되면서는 넓은 공원 안 어디를 떨어뜨려 놔도 매점을 찾아내 간식을 사 먹울 수 있었고 사자우리와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어느 쪽인지, 유난히 냄새가 심한. 원숭이가 살고 있는 집이 어딘지, 다 외울 정도였다. 또래의 아이들이 호랑이를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 나는 호랑이를 바라보는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거나 친구가 빨아먹고 있는 아이스크림이 천천히 녹는 모양을 바라보는 쪽이었다. 절대 먹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그나마 가장 오래 머물던 곳은 오랑우탄이 무리 지어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아마도 사람과 비슷한 행동을 하는 그들이 신기해서였을 것이다. 바나나를 까먹는 손이라든지 새끼를 업고 걷거나 따뜻한 봄 햇살 아래 앉아 서로의 털을 헤집어 이를 잡아주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오랑우탄을 바라보면서 진화론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도 같고... 믿거나 말거나다. 어쨌거나 나는 동물원보다는 동물이 신기하다며 동물원에 놀러 가자고 부모를 조르는 아이들이 더 신기한 아이였다.




동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없는 인간이었는지 생각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 하나가 있다. 중학생이 되어서 더 이상 어린이대공원으로 소풍을 가지 않았지만 어린이대공원보다도 백배는 더 재미없는 경기도 일대의 왕릉으로 소풍을 가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어느 날 마당에 엎드려 있는  낯선 개를 보았다. 색이 누렇고 길을 가다 보면 아무데서나 흔히 마주칠 수 있는 그냥 개. 꼬리가 유난히 동그랗게 말려있고 눈동자가 까만, 나를 보면 발딱 일어나 조심스럽게 꼬리를 흔들며 가만히 발 앞으로 걸어왔던 어딘가 주눅이 들어보이는 개였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뱃가죽과 등가죽이 달라붙은 모습이 안쓰러워 밥을 챙겨주기 시작했고 그렇게 조금씩 마당에  머무는 시간이 늘더니 최근에는 완전히 정착을 했다고 했다. 엄마는 개를 누렁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누렁이가 우리 집에서 밥을 먹기 시작하고 누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동안 나는 누렁이의 존재를 모른 채 학교를 오고 갔다. 솔직히 말하면 누렁이를 마주친 적이 있었지만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마당에 들어온 개인 줄만 알았다. 그때 나는 열심히 땅만 쳐다보며 걷는 청소년이었는데 이상하게 개는 보이지 않았고 친구들이 신은 나이키 운동화만 보였다.














사람이 사는 집에 동물이 들어와 식구가 되는 일은 그야말로 이전과는 다른 운명이 펼쳐지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처럼 쉽게 고양이를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의 손끝만 닿아도 짜증이 폭발할 것 같은 습한 여름날 고양이의 뜨거운 체온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잠을 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침대는 고양이의 차지가 되고 나는 점점 밀려나 한 귀퉁이를 가까스로 붙들고 자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물을 자주 마시지 않아서 쉽게 병에 걸린다는 고양이를 위해 집안 여러 군데 눈에 띄는 곳에 물그릇을 배치해야 할 뿐 아니라 시간이 날 때마다 신선한 물을 먹이려고 안간힘을 써야 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2년 전 그날 밤 우연히 닿았던 고양이와의 인연의 끈을 덥석 잡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삐지고 한없이 예민하고 툭하면 이유도 없이 토하고 남들이 잠든 시간에 온 집안을 뛰어다녀야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친절하게 말해 줬다면 고양이와 식구가 되는 것을 백번쯤은 더 고민했을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우리 고양이, 나의 영혼의 단짝 집사는(전편에 밝혔듯이 고양이의 이름이다) 얘는 다른 고양이와는 다르게 목청이 크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는지 요구사항이 생기면 엄청나게 큰소리로 다양한 소리를 낸다. 야옹. 양~양!!!!! 우앙!!! 어쩌다가 한 번씩 예쁘게 냥~~~~ 한다. 집사가 아깽이던 시절, 그 야옹 소리가 듣기 좋아서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실수였다. 고양이는.태어난 지 두 달 무렵부터 나에게 말을 걸기.시작했는데  한번 시작하면 쉽게 끝나지 않았다. 아. 물론 말을 건다고 생각했던 것이 혼자만의 착각이었다고 지금와서는 솔직하게 고백해야겠다. 아무튼 고양이가 내게 말을 걸때마다 말대답을 해주다가 지쳐버려서 한동안 아무 대답 없이 가만히 있으면 말을 할 때까지 냥냥 거리다가 끝내 대답이 없으면 탁탁 탁탁 발소리를 내며 걸어와서는 귀에 제 얼굴을 바짝 갖다 대고 마지막 일격을 날린다. 냥!!!!!! 설마 낮에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나? 천만의 말씀이다. 고양이는 낮에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자고 밤에는 흡사 장화 신은 고양이의 주인공 푸스처럼  건들거리며 집안을 배회한다.

뭔가 기분이 틀어지면 단식도 서슴지 않는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사료라도 바꾸게 되면 몇 날 며칠 식음을 전폐해서 나를 식겁하게 만든다. 잘못했다고 눈물로 호소하거나 손이 발이 될 때까지 싹싹 비는 것과 동시에 혹시나 해서 남겨 놓은 예전의 사료를 갖다 바쳐도 거들떠도 안 본다. 제 마음이 풀어질 때를 기다리거나 조금 더 새롭고 조금 더 맛있는 간식을 구해다가 코 앞에 들이밀며 고양이님 이제 그만 기분을 풀어주세요 하고 통사정을 해야한다.언젠가는 그런 내 노력에도 풀리지 않아서 동물병원에 가서 우울한 기분을 풀어주고 식욕을 올려준다는 약을 처방받아 먹이고 간신히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한 적도 있다. 손톱 끝만큼도 과장 없이 있던 사실을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데도 당신은 고양이와 한 식구가 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어쩔수 없이 축하한다. 앞으로 당신에게는 고생길과 꽃길이 함께 펼쳐질 것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은 세심함을 배우는 일이다. 내 삶에 고양이가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나를 받아들여 준 것이라는 말은 진실이다. 당신이 묘생에 끼어든 이상 고양이가 아프지 않게 보살펴야 하고 그들이 지닌 습성을 인정해 주고 냥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평온한 일상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적어도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면 그럴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 하는 말은 철저히 주관적이다. 그들이 아는  자신과 함께 사는 고양이에 대해서 뿐이지만 자신이 겪고 아는 사실을 보편화하고 마치 모든 고양이에 대해 아는 것처럼 떠든다.  고양이를 데려오기 전에는  또한 고양이에 대해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중 하나도 건질만한 내용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신이 지금까지 주워 들웠던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당신만의 고양이를 만나게  거라는 사실이다. 물론 기분 좋은 변화도 있다. 고양이와 한집에서 살기 시작하는 날부터 시작되는 고생과는 별개로 천국의 날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유 모를 불면에 시달렸다면, 문득 한밤중에 깨어 외로움에 눈물 흘렸다면, 험난한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끝내 찾지 못했다면 당신은 고양이의 도움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당신이 고양이의 삶에 끼어들어도 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라고. 동물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번만  생각해 보라고.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차라리 고양이를 멀리했으면 좋겠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끝까지 사랑할  없다면 이토록 작고 아름다운 고양이의 존재를 그냥 영영 잊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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