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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설 Jun 14. 2020

하늘 아래 하나뿐








내 부모님 두 분은 남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이 세상에 나와 동생, 둘만 남았다. 써놓고 보니까 마치 불우한 고아 남매로 자란 것 같지만 불쌍한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 연세에 돌아가시다니 참으로 애석하네. 할 정도의 나이에 엄마가, 그다음 3년의 간격을 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10년 이상의 투병 생활을 하셨다. 심장 질환으로 시작 헤서 누구나 예상 가능한 다양한 합병증을 지나치는 법 없이 다 거치고 거쳐 마지막엔 뇌경색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펄펄 날아다니시다가 하루아침에 뇌졸중으로 급하게 가셨다. 우리는 두 분이 떠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과연 성격 대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를 느닷없이 꺼낸 건 하나밖에 없는, 나한테는 유일한 피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사람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예고 없이 불쑥 다가오는 사람이 두렵다. 노크 한번 없이 남의 집 문을 벌컥 열어버리면 커다란 빗장을 구해와서 철컥 문에 달아 놓는 사람이다. 누군가가 가까이 오면 슬금슬금 도망갈 기회만 보는 소심증 환자다. 하지만 어렵사리 친해지면 상대를 누구보다 귀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해 지킨다. 평생 잡은 손을 놓지 기까지 죽을힘을 다한다. 지키고 싶다는 마음까지 가는데 남들보다 두 배로 시간이 걸리지만 그런 이유로 붙잡은 인연에 대한 애착은 못 말릴 정도로 강하다. 나는 천성이 고집이 세고 무뚝뚝한 사람이다. 남들에게 차갑다는 말을 들어도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차가운 사람이라는 남들의 평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사실은 뜨거움을 마음 안에 숨긴 누구보다 외로운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중학생 때였다. 학교를 파하고 집에 가면 직업 군인 아저씨와 결혼해서 이제 막 첫 딸을 낳아 기르는 옆집 새댁(경상도 새댁)이 매일 놀러 와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 나이가 중년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꽤 따르는 편이었다. 아마도 당시 우리 동네에는 새댁 또래의 말동무 상대가 없었던 모양인데 그녀에게는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 특유의 외로움 같은 게 느껴졌었다. 나를 만나면 무슨 말이라도 시키고 싶어서 입이 움찔움찔했다. 그럴 때면 나는 재빠르게 안녕하세요? 인사만 하고는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갔다. 새댁이 싫다기보다는 낯가림이었고 살갑지 못한 평소의 성격 때문이었다. 저녁밥을 할 시간이 되어야만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일어서는 경상도 새댁. 그녀가 자기 집으로 가고 나면 엄마는 언제나 나를 불러 앉히고는 왜 사람을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느냐고 그러면 못쓴다고 타이르셨다. 나는 새댁에게 아무 말도 안 했고 오히려 불편함을 무릅쓰고 조용히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내가 뭘 어쨌다고.

딱히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친한 척을 한다며 공공연하게 하는 질문이라는 것도 대부분 나를 질리게 한다.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언제나 그걸 알아서 뭐하게요? 그런 게 왜 궁금해요? 물으나 마나 한걸 왜 묻는 거죠?라는 대답을 해주고 싶어 진다. 조금 철이 들고 나서는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려면 물으나마나 한 질문에 하나마나한 대답을 해줘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사람에게 시큰둥한 성격은 지금도 여전하고 언제부턴가는 시큰둥함을 넘어서 인간에게 조금씩 질려 버렸고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좋아하기 힘들어졌다. 찬바람이 쌩 부는 성격을 볼 때마다 엄마가 나에게 했던 가장 심한 욕은 저 생파리같은 계집애였다. 딱히 욕은 아니지만 순수하고 귀여운(?) 여학생을 파리에 비유한다는 건 조금 심하지 않나? 그러던 어느 날 국어사전에서 생파리라는 단어를 찾아보다가 참으로 놀라운 설명이 적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생파리: 남이 조금도 가까이할 수 없을 정도로 성격이 쌀쌀하고 까다로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라고 적혀 있었다. 박정자 여사는 알고 보면 상당히 박식하셨다.

그 생파리같은 계집애가 다섯 살 되던 해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나는 동생이 태어나길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아이였다고 한다. 툭하면 불룩해진 엄마의 배를 쓰다듬으며 동생이 나오면 기저귀 심부름도 다 해주고 동생을 지켜줄 거라고 큰소리를 치더란다. 실제로 동생이 태어나자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 하는 모양이 어른들이 보기에는 웃기지도 않았는데 그런 나를 보며 양친 부모가 없어도 걱정이 없을 만큼 남매의 우애가 좋다며 내심 흐뭇해하셨단다.(그렇다고 둘만 남기고 일찍 눈 감으실 것 까지는 없었는데 ) 초등학교 5학년 때로 기억한다. 학교에서부터 마려운 똥을 집에 도착할 때까지 죽어라 참다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바지에다 싸버린 동생의 아랫도리를 어른보다 깨끗하게 씻기고 더러워진 바지 뒤처리까지 야무지게 하고는 저녁밥까지 잘 챙겨 먹였다. 그 일은 나에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외출을 했다가 돌아온 엄마는 대견해서 죽겠다는 얼굴로 폭풍 같은 칭찬을 하셨었다. 이게 그렇게 칭찬을 받을 일인가? 하며 어리둥절했었다. 어른보다 아무지고 깨끗하게 라는 표현은 그 날의 일을 회상할 때마다 침을 튀기며 엄마가 덧붙이는 말이다. 내 기억은 엄마와는 다른 의미로 생생하다. 당시에 나는 동생이 싼 똥이 더럽다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동생이 외출했다가 돌아온 엄마에게 매라도 맞게 될까 봐 걱정이 돼서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똥 얘기 말고도 동생과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동생을 매우 아끼는 누나와 그런 누나를 잘 따르는 동생, 동화보다 더 동화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다. 그때의 나는 정말 생파리와 거리가 먼 계집애였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생파리라니 지금 생각해도 억울하네.














며칠 전 세상에 둘도 없는, 유일한 피붙이가 집에 놀러 왔다. 그놈은 이제 눈가에 주름도 제법 깊어졌고 중년의 나이를 속일 수 없을 만큼 배도 불룩 나왔다. 동생이 현관을 들어서는 순간 아버지로 착각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아버지를 빼다 박는다. 사랑하는 그놈이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다 건너편에 앉아있는 나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하는 말이 누나! 갈수록 엄마 같아져! 한다. 나는 조금 웃었다. 한 뱃속에서 나온 남매. 아버지를 닮은 얼굴이 엄마를 닮은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다.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우연히 만들어진 말이 아니다. 늘 그렇듯 우리는 우리만 하는 놀이를 시작한다. 이름하여 닮은꼴 찾기 놀이다. 


요즘 누나는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하고 말하면 어?! 나도 그래 누나. 우린 어쩌면 성격이 이렇게 똑같냐..

누나! 난 이 문제로 골치가 아파. 누나라면 어떻게 할 거야? 

동생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나면 어김없이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누가 남매 아니랄까 봐 어쩌면 사고의 결이 이렇게 비슷할까? 같은 뱃속에서 나와도 아롱이다롱이 라는데 그 말도 우리에게는 해당이 안 되는가 봐. 그러게..





출처-https://unsplash.com/






우리는 점점 신이 나서 놀이에 열중한다. 사실 이 놀이는 단순해 보이지만 치유의 효과가 탁월하다. 나는 네 편, 너는 내편이라는 것을 확인하며 남매간의 우애를 다지는 놀이다. 각자의 삶에 충실하면서 세상과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이자 우리 안에 어쩔 수 없이 쌓인 외로움을 털어내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닮은 구석을 열심히 찾다 보면 목이 말라온다. 연신 물을 끓이고 차를 만들어 대령한다. 처음엔 핸드드립 커피였다가 그다음엔 자스민차, 보이차, 녹차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슬슬 배가 고파진다. 마지막으로 우유를 넣은 밀크티까지 만들어 마시고 나면 어느새 세 시간쯤 지나가 있다. 아쉬움을 억지로 털어내고 집으로 가는 남동생의 너른 어깨와 등에 눈길이 머물다가 이내 눈물이 조금씩 고인다. 삼십 분이면 갈 수 있는 동네에 살고 있는데도 헤어질 때마다 늘 이런 식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나의 동생이 이토록 애틋하다. 남들이 들으면 말 같지 않은 말이라며 비웃겠지만 그 옛날의 똥싸개가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 단란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다. 아마도 동생의 나이가 오십이 되고 환갑을 지나도 계속해서 대견해할 것이다. 생파리같은 나를 그나마 사람답게 살게 하는 유일한 사람,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한 나의 아우가 없었다면 누가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겠나. 상상만으로도 벌써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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