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rinji | 時間がない
교양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는 스스로 말할 힘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시간을 비워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D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위한 자리를 비워 두는 자다.
-오학준, '오학준의 주변 끊임없이 멀어지며 가라앉기'
이것이 영원히 나의 일이 아닐 것이므로, 그 끔찍한 폭력의 결과로부터 나는 자유로울 것이므로 더욱 잔인한 재현을 원하고, 그 재현 앞에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분노를 표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아닌가.
-120p
노련한 제작진은 다수의 경험을 바탕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결정한다. 그리고 여지없이, 출연자는 카메라 앞으로 걸어 들어온다. 제작진은 숨죽여 환호한다. '리얼한 반응'은 이렇게 완성된다. 다듬을수록, 리얼해진다.
-76~77p
주변부에 오래 거주하면서도 끝내 중심부로 들어가기 위해 중심의 시선을 체화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오래 머물러야 하는 곳이 우리의 자리라고(이 시리즈 제목처럼) 받아들이고, 이곳에서만 보이는 풍경을 정교하게 묘사하는 쪽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
-272p
12년간 방송계에 몸담았던 오학준 PD의 에세이 [오학준의 주변 끊임없이 멀어지며 가라앉기].
그는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하지만 안에서도 명료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알력'들에 대해 방송 노동자로서 느낀 바를 쓰고 싶었다고 한다.(책 274p)
그는 자신이 인기 있는 프로그램을 낸 적도 없고, 이름이 알려진 PD도 아니라 책을 쓰는 데 있어 주변의 힐난을 들을까 두려웠다지만
그 모든 걱정을 뒤로하고 결국 이렇게 책을 공개해서일까,
그의 글 속에서 나는 '내려놓음'의 용기, 혹은 자신과 똑같이 주변부에 자리한 이들과 연대하겠다는 용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종사한 업계의 민낯을 드러낸다는 건 정말 보통의 용기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물론 '기레기'나 '언론플레이', '악마적 편집'과 같은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가 일상적으로 쓰일 정도로 미디어에 불신을 갖고 보는 사람이 많은 요즘이라지만..
얼마든지 오랫동안 다져온 편집 스킬(?)로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을 테지만
현업에 종사하는 사람임에도 가감 없이, 방송계의 현실을 담아낸 그의 글을 읽으며
그가 얼마나 다큐멘터리 제작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를 헤아려 보게 되었다.
누군가 대신 말해주지 않으면 사라지고 말 목소리들을 담고,
사람들의 면면을 긴 호흡으로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PD이고 싶었던 오학준 PD.
그는 [오학준의 주변 끊임없이 멀어지며 가라앉기]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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