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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에 담긴 영속에의 열망,
혹은 농담.

♬Grieg | Lyric Pieces Book 1, Op. 12: No

by 로제

모든 것이 지속 안에서, 저 자신을 전시하고 제 포즈 속에 지속하며,

그럼으로써 제 반영으로 응고되려는 육체의 영속 안에서 포착된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를 바라보는 우리를 바라보며 이 여인은 관찰한다.
그녀는 포식자이자 스스로의 먹잇감이다,
-나탈리 레제, '전시'



거기엔 종종 사람들이 사진에서 발견하는 특성들, 즉 즉각성의 예찬이라든가 비상, 난입, 비약, 또는 사진 속에서는 영속하지만 현실에서는 짧은 묵시에 불과했던 영웅적인 제스처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37~38p


마치 구겨지는 드레스의 비단 자락처럼, 감지할 수 없어도 생생하게, 이미지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채, 그럼에도 일순간, 거기에, 내가 찾는 것이, 순식간에 도망치며 그런데도 온전히 알아보게 되는 그것이, 있다.

-91p


그 어떤 가장, 어떤 유희도 유혹이 아니며, 그 어떤 끔찍한 것, 그 어떤 이용도 메멘토 모리, 그 같은 종류의 지나친 기교가 아닐 수 있었으리라, 그러했으리라. 댓츠 미, 진정성의 드라마, 진정성의 어리석음이자 영광, 광기의 농담. 그녀의 유일한 가면은 사진 그 자체다.

-131~132p



19세기 최고의 미녀, 패션모델, 초상사진 예술가 카스틸리오네 백작부인을 추적하는 이 소설은,

유려한 문장들이 빼곡히 모여 장미 넝쿨을 이루고

스러져가는 노을 또는 궁전을 바라볼 때와 유사한,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 때와 같은,

아련한 애수를 남긴다.


붙잡아야 할 무언가를 놓친 것만 같은 안타까움, 좋을 땐 좋은지 모르고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진가를 발견하게 됐을 때의 낮게 피어오르는 탄식..


내가 놓치고 만 아름다움, 아름다움의 종말이 영영 계속되는 게 두려워

우리는 기록을 남기고, 선물을 건네고, 사진을 찍고(찍히고), 어떤 형태로든 자취를 남기는 것인가.


지금 존재하고 바라보는 게 전부임에도,

이미 지나쳐간 일들은 '실재'하지 않는, 상상의 영역에 불과한 것임에도.


그럼에도, 항상 '지금'과 같기를-영속성 위에 놓이기를-애를 쓴다,

스스로 전시되기 위해. 전시된 나를 누군가가 포착해 주길 바라면서.


모든 전시는, 그 자체로 역사다, 꿈이다,

진실을 위장한, 실체로부터 떨어져 나간 잔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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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ieg | Lyric Pieces Book 1, Op. 12: No. 1 Ari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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