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Moon Run | Warmest Regards
사진 속 그녀는 빚도, 고난도, 수치심도 없었다. 싱그럽고 아름답고 세련됐다. 거울을 바라보듯 잠시 행복에 잠겼지만, 이내 강한 낯섦을 느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지금 이렇게 불완전한 내가 나일까, 아니면 인스타그램 속 화려하고 완전하게 존재하는 내가 나일까.
-이우, '페르소나를 위하여'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지. 여기서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어. 불가피하게 무대에 올랐으니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는 일이지. 우린 그저 주어진 각본을 소화시켜야만 하는 연기자일 뿐이야."
-220p
"나는 성형을 하고 세상에 사랑의 먹이사슬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 먹이사슬의 피라미드에서 한 단계 위로 올라간 기분이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어. 한국에 처음 왔던 베스가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283p
"저는 아무래도 군함도가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거짓 속에서 머물라고 자꾸만 붙잡는 것 같아요. 터무니없는 항해를 계속하라고 붙잡고 늘어지네요…."
-324p
이우의 소설집 [페르소나를 위하여]는 책에 실린 단편 중 하나와 동일한 제목이지만,
소설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매우 명료한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단편이라도 '페르소나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달아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만큼.
이처럼 8개의 단편 모두 핵심 메시지가 동일하게 담겨 있었는데,
모티프의 중심 속으로 서서히 파고들어가는 듯한(하나씩 하나씩 까발리는? 듯한) 서사가 긴박감을 준 반면
본성의 민낯을 건드리는 문장들이 '뼈 때리는 공감'을 자아내 부끄러우면서도 통쾌하다는
이중적인 감정을 들게 했다.
책은 읽을 땐 아무리 좋았어도, 생각보다 빠른 시간 내에 기억이 휘발되어 버린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스토리보다도 의미 전달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데
한 문장에서라도 내가 의미를 느껴버린다면 그건 나를 어떻게든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페르소나를 위하여]같은 경우에는 어렵지 않게 메시지를 드러내고, 강화하고,
분명하게 와닿는 만큼 사유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때마침 요즘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화두와 맞물려있었다는 점에서
꽤 오래 기억될 책일 것 같다.
(이제는 까발려진) 페르소나를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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