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ll Evans Trio | Isn't It Romantic
이제 사랑은 영혼의 신비롭고 강력한 힘이 아니며, 설명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현상, 곧 심리학과 진화론과 생물학의 법칙들로 규정되어야 하는 반응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아픈가'
19세기 중반이나 말엽까지만 하더라도 낭만적 관계가 이미 현존하며 비교적 객관적으로 정립된 사회계층 의식에 바탕을 둔 반면, 현대 후기에 들어와 우리가 자존감이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자아가 스스로 책임지고 이뤄내야 하는 일이 되었다.
-224p
자유와 자율이라는 이상이 인정과 엇갈리며 충돌하는 탓에 낭만적 관계 안에서 자율의 구조적 불평등이 나타나는 게 사실이다. 또한 자아와 책임감을 둘러싼 생각을 심리학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탓에 문제의 정확한 진단이 이뤄지지 않는다.
-287p
사랑은 아프다.
왜 사랑이 아파야만 할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적 경험 때문에,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관계 맺기에 있어 서툰 남자이기 때문에, 건강한 자기애를 갖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과다한 기대를 갖는 여자이기 때문에, 성적 매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지도 모르고 충동에 이끌렸기 때문에 …?
정말일까?
이는 모두 생물학, 심리학적,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 통념들이다.
이러한 통념이 현대사회에 깊숙이 스며든 현재,
사랑은 이제
'설명과 통제를 필요로 하는 현상, 일종의 법칙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반응 작용(326p)'이 되어
진정한 낭만을 잃고 말았다.
아니, 사랑에 낭만이 빠져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학문적 지식과 논리로 사랑을 규정지으려는 시도는 많은 인지 작용을 일으켜
뚜렷한 해법을 발견했다는 안도감을 주는 대신, 느낌에서 비롯되는 열정을 식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많은 정보를 요구하는 일은
사랑에 대한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한 심리적 방어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아픔을 피해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되려 꼼꼼히 따져보고 분석하여 연애를 시작했어도,
내가 미리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난다면
그 아픔은 자책과 함께 더 깊어질 수 있다.
한편으론 감정에 대해,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자 한 시도가
우리의 타고난 '직관'을 흐리게 하는 건 아닌지,
사랑할 수 있는 진짜 능력을 덮어버리는 건 아닌지도 따져봐야 할 문제다.
계속해서 사회를 지배하는 통념을 냉철하게 분석하며
반대 입장을 내보인 이 책은
오히려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뜨거운 주장을 펼친다.
느껴라, 부딪혀라, 사랑의 열정에 맡겨라.
열정적 사랑은 불확실함과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다!
사랑의 실패를 자신의 자존감, 무능과 연결 짓지 마라!
그냥 사랑하고, 아파해라!
사랑에 대한 나의(시대의) 편견을 발견하게 하고, 다시금 가슴에 불을 지핀 이 책은
개인적으로 [사랑은 왜 아픈가]라는 제목이 아쉬웠다.
아픔뿐 아니라 모든 감정을 다룬 책이니, [사랑은 무엇인가]같은 제목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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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l Evans Trio | Isn't It Romant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