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ethoven | Moonlight Sonata Op.27 No.1
그것은 비로소 내 것이었고 완연히 내 것이었다. 파괴만큼 충직한 소유의 증거는 없으니까. 오직 자신의 것만을 온전히 파괴할 수 있고 온전히 파괴할 수 있는 것만이 오로지 내 것일 수 있으니까.
-이혁진, '광인'
그런 환함이, 자신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깨끗함이 찬란하고 소중한 능력이라는걸. 한 줌처럼 작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사랑하는 강력하고 드넓은 능력. 그건 나이를 먹고 실망과 낙담, 체념들이 퇴적하면서, 흔히 말하듯 세상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잃어버리기 마련인 것이었다.
-137p
비관하고 염세하고 체념하고 자포자기하는 게 전부가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걸, 베토벤은 알고 그렇게 곡을 썼죠. 다만 노래할 것, 그게 베토벤이 이 곡의 너머에서 말하는 거예요. 흑인들이 고되고 암담한 노동 속에서도 노래했던 것처럼요.
-295p
마음이라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소시오패스, 사이코패스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자신의 마음에, 자기 편향의 기계인 마음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들일 뿐이었다.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보이는 게 없어질 때까지 마음을 따라간 인간들. 사랑의 끝에 사랑이 없어지듯 마음의 끝에서도 마음은 사라진다. 그리고 거기에선 모든 것이 그림자가 될 뿐이다.
-552p
세상의 요구가 아닌 자신만의 꿈과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며 나아가는 두 사람, 준연과 하진.
그간 피상적 성취만을 좇으며 살아온 해원은, 자신과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을, 동경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충실하게, 견고하게,
경애의 감정이 극단에 이르러 증오의 감정으로 바뀌는 시점에 이를 때까지.
그제야 알게 된다.
자신이 품었던 숭고한 감정은 허상이었고, 욕망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그토록 진실해 보이던 준연도, 하진도 한순간 가짜로 변할 수 있는 인간일 뿐임을.
그러한 통찰에 이르렀건만, 자신의 최후를 한 방의 총에 맡긴 해원의 선택을 보며
안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짜를 알았다고 해서 꼭 진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가짜로 거대하게 쌓아 올린 시간이 길면 길수록.
어쩌면 해원은 가짜에 너무 익숙해졌기에, 그 익숙함을 벗어난다는 게 더 고통스러운 일이었을지 모른다.
또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아마
앞으로 자신의 길을 안내해 줄 진짜가 없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진짜가 없다는 것,
준연도, 하진도, 해원도 타락의 원인은 그 하나이지 않았을까.
준연이 베토벤에 대해 했던 말이 가장 아프게 남는다.
'다만 노래할 것'
그토록 수려하게 음악적 해설을 풀어낸 그였건만, 그가 들은 노래는 실상 공허한 울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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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ethoven | Moonlight Sonata Op.27 No.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