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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떠나가고, 고독만이 나를 위로하네.

♬Daichi Fujiki | Plaisir D'amour

by 로제

내가 가장 감미롭게 명상이나 몽상에 잠길 때는 나 자신을 잊을 때다. 이를테면 생명체의 체계 속에 녹아들어 자연과 온통 일체가 될 때,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황홀감을 느낀다.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오로지 현재에 머물러 있어 과거의 일이 아무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 몸 상태가 어떤지 명확히 알지도 못했고,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고통도, 걱정도, 불안도 느껴지지 않았다.

-31p


나는 한 번도 인간의 자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결코 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항상 주장했고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지켜 낸 자유이며, 그로 인해 내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산 자유이다.

-139~140p


나는 사람들의 잔인한 비웃음과 거짓말에 내 마음을 단련시킬 요량으로 공공 산책길이나 사람들로 북적이는 장소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그러나 나는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목적한 방향대로 진행조차 시키지 못했다.

-186p



산책을 하면서 한순간도 좋지 않았던 적은 없다.

아무리 번잡한 상태였어도 산책을 하다 보면 점차적으로 그 모든 번뇌와 들끓던 감정이 사그라들고,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어렴풋이 떠돌던 생각이 형태를 갖춰 가며, 스쳐가는 모든 풍경이 더욱 생생해지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나와 섞여들며 경이롭고도 평온한 일체감으로 가득 차오르게 된다.


산책으로부터 얻게 되는 이러한 소멸과 생성의 감각은 오직 혼자 거닐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 하더라도 고독한 산책이 주는 유익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이는 내가 나 자신으로 향하는 깊은 몰입을 무엇보다 가치에 두는 입장이기에 그런 거고,

공유의 감각, 정서, 나눔으로써 더욱 풍성해지는 사유나 진한 온기 같은 것들에 더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함께 걷는 산책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다시 말해 나는 자발적 고독을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루소는 자발적 고독을 진정 좋아했던 고독한 산책자였을까, 아니면 어쩔 수 없이 고독해져야만 하는 산책자였을까?


나는 루소가 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루소는 산책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이 사람들에게 품었던 애정, 그 애정의 크기만큼 돌아왔던 멸시로 인한 좌절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여러 감정에 요동치는데, 물론 그 또한 완전한 평온을 맛볼 때도 있지만 잠시간에 그칠 뿐이다.


그는 계속하여 사람들과의 여러 추억을 회상하면서도 자신은 이제 사람과 함께하는 건 넌더리가 나며 고독만큼 좋은 게 없다고 하는데, 이러한 생각의 흐름에서 나는 그의 모순적인 면모를 찾을 수 있었고,

그가 고독을 예찬하며 그 이유를 늘어놓지만 실상 그 이유라는 건 애써 사람들에게 들끓는 애정을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변명에 불과하다고 느꼈다.


루소는 그가 좋아하는 산책의 시간 동안 그토록 벗어나고자 한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했고, 혼자만의 온전한 휴식을 길게 누리지도 못했다.

물론 산책으로부터 그가 얻은 긍정적인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런 루소에게서 사람들과 애정을 나누고 싶음에도 조심스러워 망설이게 되는 순진무구하면서도 부끄럼이 많은 예민한 아이의 기질을 보았고, 그 때문에 더없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느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라는 책까지 펴낸 그이지만

혼자서 고독하게 산책하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산책하는 게 더 잘 맞는 사람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고독했기에 가능했던 재치 있는 사유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게 한 루소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부디, 육신의 짧은 생을 끝낸 지금은 외롭지 않게, 다른 영혼들? 과 온기를 나누며 지내고 계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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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chi Fujiki | Plaisir D'am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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